신규 원전 부지 선정·양수발전소 신규 건설 사업 추진도 지연
2031년부터 2GW 이상 발전 설비 부족…전력 수급 차질 우려
정치권 반원전 기조로 원전 생태계 망가지면 수출 악영향
국가 에너지 대계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원자력발전 비율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야당의 반대와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면서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다. 산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전기본 수립 계획이 지체되면서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게 돼 피해가 불가피해 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력기업들은 지난해 5월 나온 11차 전기본 초안에 따라 준비해오던 사들업을 중단시킨 상황이다. 지난해 말에 확정됐어야 할 11차 전기본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어서다.
전력망 구축, 발전소 건립 계획 등 향후 15년간의 전력 정책을 담은 최상위 계획인 전기본이 확정돼야 구체적인 사업 방향을 정하고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규 원전 부지 선정과 신·재생 발전의 간헐성에 대응한 양수발전소 신규 건설 사업 추진도 지연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도 11차 전기본 확정과 함께 진행할 예정이던 11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 수립 절차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전력당국과 업계는 마음이 급하다. 재작년 수립한 10차 전기본에 따른 현 계획으로는 당장 2031년부터 2GW 이상의 발전 설비가 부족해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0차 전기본 수립 이후 경기도 용인 일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600조원을 투입하는 반도체 특화단지가 조성될 예정으로 대규모 전력 수요가 발생할 예정이다.
또 AI에 필요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의 필요 전력량은 2022년 74TWh에서 2027년 500TWh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11차 전기본 수립 과정에서 2036년 수요전망치를 2년 전 118GW보다 11.3GW 늘어나 129.3GW(목표수요)로 상향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의 기본 틀인 전기본 수립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송전망 투자부터 가스 수급, 재생에너지 구축 등 사업 전반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첨단산업에 대한 전력공급 차질과 더불어 최근 탄력을 받고 있는 원전 수출에도 11차 전기본 확정 지연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원전 재각광 추세와 한·미 간 원전 수출 업무협약(MOU) 체결과 한국수력원자력·한전-미 웨스팅하우스 간 지식재산권 분쟁 해결 등으로한국 원전의 해외 수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대외적인 긍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국내 정치권은 여전히 원전을 두고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 특히 야당은 정부가 신규 대형원전 건설 목표를 3개호기에서 2개호기로 줄이는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치권 일각의 반원전 기조가 국내 원전 건설 사업 축소로 이어져 산업 생태계가 다시 망가지면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 폐기로 원전 산업 생태계가 겨우 복원된 상황인데 전기본이 차일피일 밀리면서 다시 망가지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며 "전기본이 빠르게 확정돼 예정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