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PBR 0.88배…밸류업 이후 저평가 심화
日사례 벤치마킹에도 단기 정책 효과 미미
자사주 보유 계획 공시 등 구체안 실효성 기대
지난해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목표로 추진해 온 밸류업 정책이 암초에 부딪힌 모습이다. 정부의 야심찬 목표에도 작년 한국 증시는 오히려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글로벌 증시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올해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속도 조절 등 만만치 않은 환경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내수 침체와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저성장)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당장 트럼프의 고강도 관세정책으로 수출주들을 중심으로 타격이 커지면서 국내 증시에 짙은 먹구름이 끼인 상태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을 짚어보고 향후 성과를 위한 핵심 이슈들을 총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1년 간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국내 증시는 되레 저평가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올 들어 연초 반짝 반등했던 증시는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 속에 환율 상승 등이 겹치면서 다시 하락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주가수자산비율(PBR)은 0.88배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주요·세부 내용이 공개됐던 작년 2월26일 0.96배와 비교해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했던 0.79배에 근접한 수준이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투자 척도 중 하나다. 1배를 밑돌면 자산 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더 낮다는 의미로 낮으면 낮을수록 저평가된 것으로 본다.
개별사로 살펴봐도 PBR은 하향 추세다. 지난해 PBR 1배 미만인 코스피 기업은 573개사로 직전년도 520사 대비 10.19%(53개사)가 불어났다.
밸류업 공시가 시행된 지난해 5월27일부터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총 102개사가 기업가치 제고 공시를 했으나 저평가는 되레 심화된 것이다. 밸류업이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기업 스스로가 저평가를 벗어나도록 촉구하겠단 목적으로 시행됐던 점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정책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최근 금융투자업계와 학계에서는 대외적 요인으로 코스피 지수가 부진한 점은 차치하고 저평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밸류업 정책의 방향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순자산의 효율적 재배치와 수익성의 제고, 적절한 주주환원 정책 측면에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코스피 기업들의 수익성이 낮아 본질 가치가 저하된 상황이라 주식 수익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설명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시가총액 상위 30%에 해당하는 대규모 기업의 75%는 과거 10년 간 달성한 자기자본이익율(ROE) 성과가 주식 수익률보다 높았다.
ROE는 자기자본에 대한 기간 이익 비율로 기업이 자기자본을 활용해 1년 간 얼마를 벌어 들였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특히 단순히 기업들에게 밸류업 공시를 요구하기보다 실질적인 기업가지 제고를 기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도록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업이 현금 배당의 확대 혹은 자사주의 매입·소각을 통해 저조한 주가 수익률을 적극적으로 보전하는 정책을 펼칠 경우 주주의 총 수익률을 높이고 주가지수의 유의미한 상승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 해소되지 않는 극심한 저평가 문제에 대해 법제적 접근이 효과적이란 의견도 나온다. 주주권리 보장과 효율적 자원 배분 측면에서 인수·합병(M&A) 압력을 강화하고 합병 대가와 공개매수 가격 등이 공정하게 산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행히 정부가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업의 자발적 참여라는 밸류업 본질은 유지하면서 세부내용을 구체화하고 있어 향후 정책 실효성이 높아질 수 있단 기대감이 나온다. 일례로 작년 말부터 시행된 ‘자사주 보유 계획 공시’는 건전한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해 밸류업 효과를 제고할 것으로 주목된다.
금융당국은 자발적인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기 위해 자사주 비중이 5% 이상일 경우 보유 현황 및 목적, 처리 계획을 이사회 승인 하에 공시하도록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자사주 매입은 대표적인 주주환원책이기는 하나 소각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한편으론 소액주주들에게 잠재적 리스크 요인으로 평가됐다. 이 가운데 ‘자사주 보유 계획 공시’가 시행되며 주주환원 여력과 의지가 있는 기업들을 구분해내기가 손쉬워졌단 의견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밸류업 정책 2년 차를 맞아 기업가치 제고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도 추진한다. 참여 독려를 강화해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정책 모멘텀을 확산하겠단 의도다.
권순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나 시스템적인 기반이 마련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 펼치는 기업에 대한 기대감 유효할 전망”이라며 “자사주 매입, 소각 관련 계획을 이미 공시했거나 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종목 중 자사주를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의 자사주 추가 소각 유인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