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일 강화 위해 ‘수수료 무료’...연간 비용 부담 1천억 이상 추정
6주 만에 순자산 2조 넘게 유입...해외주식 강자 키움·토스증권 긴장
공격적 기업 문화 속 대대적 마케팅·인력 수혈...출혈 경쟁 심화 우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며 외형 성장을 꾀하는 것으로 유명한 메리츠증권이 수익 다각화를 위해 시장 공략 전략의 방향을 틀었다. 부동산금융을 통해 벌어 들인 돈을 상대적으로 취약한 리테일(소매금융)과 전통 기업금융(IB) 부문에 쏟아부으며 증권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양상이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부동산금융의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급성장을 이뤄낸 메리츠증권이 사업 다변화를 위해 또다시 과감한 지출에 나서면서 업계 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공격적인 경영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 가운데 증권사들의 출혈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11월 18일부터 내년까지 업계 최초로 ‘Super365’ 계좌 이용 고객의 국내·미국 주식 거래 수수료와 달러 환전 수수료를 무료 적용하고 있다. 미국 주식의 매도 비용을 비롯해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에 내야 하는 수수료까지 모두 회사가 부담하는 파격적인 이벤트다.
슈퍼365 계좌 예탁자산 규모는 이벤트 시행 후 25일 만에 1조원이 넘게 유입됐고 이후 20일 만에 또 1조원이 추가로 들어왔다. 하루 평균 해외주식 거래 액수는 이벤트 시행 전과 비교해 약 50배 급증하는 효과를 봤다.
지난해부터 침체된 국장을 떠나 미국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서학개미’들이 늘어나면서 해외주식 수수료는 증권사 리테일 부문의 효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해외주식은 국내주식보다 거래 수수료율 평균이 높고 환차익 수수료까지 수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메리츠증권의 공격적인 수수료 무료화 전략은 업계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증권가는 메리츠증권이 이번 이벤트로 연간 부담하는 비용을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외주식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온 키움증권과 이를 매섭게 추격하며 고객을 유치해온 토스증권 모두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다.
지난해 토스증권의 반격에 당황한 키움증권은 리테일 1위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 태스크포스(TF)를 수개월간 가동해왔다. 토스증권이 해외주식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툴 정도로 위협적인 성장세를 보인 영향이다. 키움증권은 작년 10월 한 달간 해외주식 체결 금액(21조4000억원)이 약 22조원을 달성한 토스증권에 처음으로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키움·토스증권으로 나뉜 양강 체제에 메리츠증권의 공세가 또 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결국 키움증권은 이달 9일부터 매월 해외 주식 체결 금액 기준을 충족한 고객을 대상으로 최대 50만원의 현금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멤버십을 출시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토스증권 역시 마케팅 전략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메리츠증권이 다소 과도한 마케팅에 나선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메리츠금융그룹 차원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대형사로 막대한 지출을 감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반면 메리츠증권이 마케팅 공격의 강도를 높이면서 시장 전반의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실제 메리츠증권의 수수료 전액 무료로 인해 경쟁 격화가 본격화했다는 증권사 리포트도 등장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 21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경쟁 심화가 불가피해졌으나 경쟁에 따라올 수 있는 증권사는 한정적”이라며 “최근 직관적인 앱으로 해외주식 강자로 떠오른 토스증권의 부담이 특히 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의 우려에도 올해 메리츠증권은 강력한 영업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7월 김종민 대표를 신규 선임해 IB 부문을 맡기고 기존의 장원재 대표는 세일즈앤트레이딩(S&T)과 리테일 부문에 집중하는 각자 대표 체제를 통해 각각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전통 IB 부문의 인력 흡수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BNK투자증권 출신인 김미정 전무·우영기 상무·김형조 상무가 메리츠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들은 모두 지난해 BNK투자증권이 전통 IB를 키우기 위해 미래에셋증권에서 영입해온 IB 전문가들이다.
특히 회사는 최근 NH투자증권 출신인 송창하 신디케이션본부장에 이어 ‘IB 대부’로 불리는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까지 상임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전통 IB 강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부동산금융 관련 IB에 강점을 지닌 메리츠증권은 상대적으로 약한 부채자본시장(DCM)과 주식자본시장(ECM), 인수·합병(M&A) 등 다른 영역의 IB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부동산시장 호황기에 PF 부동산금융에 가장 많은 자금을 공급하면서 급성장을 이뤄낸 회사”며 “고위험과 고수익, 성과주의 위주의 사업모델을 성공시킨 특유의 기업문화와 이에 따른 부작용 모두 업계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점에서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