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후 20주년을 맞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뮤지컬 팬이라면 통과의례처럼 봐야 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탄탄한 스토리와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지킬앤하이드’는 20년간 한국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젠 작품 자체보다도 지킬/하이드 역에 누가 캐스팅되는지, 그리고 무대에 오른 새 ‘지킬’은 어떤 연기를 펼치는지가 더 관심사가 됐다. 거꾸로 말하면 배우에게도 ‘지킬앤하이드’는 ‘꿈의 무대’이자 굉장히 부담스러운 무대인 셈이다.
조지킬(조승우), 류지킬(류정한), 홍지킬(홍광호) 등으로 이어온 ‘지킬앤하이드’ 무대에 배우 김성철이 새롭게 합류했다. 지난 11월 29일부터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지킬앤하이드’에서 김성철은 선배 지킬들과는 또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김성철의 필모그래피를 자세히 보지 못한 사람들은 김성철이 ‘지킬앤하이드’ 지킬 역을 맡는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성철은 ‘화면 속 배우’가 아니라 ‘무대 위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출신 김성철은 2014년 뮤지컬 ‘사춘기’가 데뷔해 ‘몬테크리스토’ ‘데스노트’ ‘스위니토드’ 등의 뮤지컬 무대에 섰다. 2017년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도 수상했다.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주목받던 김성철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2017년 tvN ‘슬기로운 깜빵생활’에서 법자 역을 맡으면서다. 안정적이고 귀에 쏙 들어오는 발성과 연기는 김성철이란 배우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후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올빼미’ ‘댓글부대’ 등의 영화와 ‘그해 우리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아스달 연대기’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고, 특히 최근 유아인 대신 투입된 넷플릭스 ‘지옥’ 시즌2에서는 유아인을 완벽하게 지운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화면 속 배우’ 김성철만 보던 대중에게는, 김성철이 갑자기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 역을 맡은 것에 대해 의아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공연 초반 김성철의 무대를 본 관객들의 리뷰에서는 “첫 노래를 부를 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아홉 번째 무대였던 지난 19일 공연에서 김성철은 기존 자신의 팬들뿐 아니라, ‘지킬앤하이드’ 팬들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매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연기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헨리 지킬 박사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강약 조절도 능숙했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다가도.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바뀔 때는 기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또다른 김성철이 보였다. 이미지상 다소 우려스러웠던 하이드의 모습도 의외로 강렬했다.
특히 ‘지킬앤하이드’의 대표 넘버인 ‘지금 이 순간’( This Is The Moment)에서는 기존 김성철의 가창 스타일에서 변화됐지만 더 탄탄해진 목소리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류정한이나 홍광호 등 굵직한 톤의 선배 배우들과도 분명하게 차별화를 이뤘다. 이들이 고음으로 넘버를 표현할 때 직선의 느낌을 줬다면 김성철은 부드러운 곡선의 느낌을 줬다. 탄탄하지만 부드러움을 갖춘 셈이다. ‘철지킬’의 탄생이었다.
물론 아직 무대 때마다 다소 기복이 있다는 평이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김성철뿐 아니라, 또 ‘지킬앤하이드’ 무대뿐 아니라 어느 뮤지컬 어느 배우에게든 통용되는 말이다. 즉 ‘철지킬’ 김성철이 역대 지킬들과 같은 자리에 있음을 확인할 순간은, 이번 ‘지킬앤하이드’ 시즌의 마지막 무대일 것이다.
한편 이번 ‘지킬앤하이드’ 지킬/하이드 역에 홍광호, 신성록, 최재림, 전동석, 김성철이, 루시 역에 윤공주, 아이비, 린아, 선민, 김환희가, 엠마 역에는 조정은, 최수진, 손지수, 이지혜가 캐스팅됐다. 지킬/하이드 역의 신성록, 최재림, 루시 역의 아이비, 린아, 엠마 역의 이지혜는 3월부터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