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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인증 받은 배터리에 불나면?... '배터리 인증제'의 두 얼굴


입력 2024.10.16 14:54 수정 2024.10.16 15:44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정부, 내년 2월 '배터리 인증제' 시행… 15일 시범사업 착수

인증한 배터리 화재시 어떻게? 향후 사고시 대책 있어야

배터리 인증 '셀' 아닌 '팩' 단위… 배터리 제조사 책임 묻기 어려워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량들이 전소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앞으로 국내에 출시되는 전기차에 대해 배터리 인증제를 통해 안전성을 직접 시험한다. 내년 2월부터 인증제가 시행되며, 지난 15일부터 시험 사업에 착수했다. 인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사고 이후 높아진 '전기차 기피현상'을 해소하고, 안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로부터 인증 받은 전기차에서 화재가 날 경우 정부의 책임소지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조사보다도 화재난 전기차를 허용한 정부로 화살이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팩' 단위로 안정성을 검증할 경우 배터리 제조사에는 책임을 묻기 어렵단 점도 인증제의 사각지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15일부터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인증제 시범사업에는 승용차 배터리 부문에선 현대차, 기아, 이륜차 배터리 부문에선 그린모빌리티, 대동모빌리티, LG엔솔 등 총 5개 업체가 참여했다.


배터리 인증제는 전기차에 장착되는 배터리의 안전성을 정부가 사전에 직접 시험해 인증하는 제도로, '자동차관리법' 개정(지난해 8월)에 따라 내년 2월 시행되며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 의무화된다.


배터리 안전성 시험은 자동차관리법에 따른 성능시험 대행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총 12개 시험항목에 대해 진행한다.


사전항목은 ▲열충격시험 ▲연소시험 ▲과열방지시험 ▲단락시험 ▲과충전시험 ▲과방전시험 ▲과전류시험 ▲진동시험 ▲기계적시험(충격시험, 압착시험) ▲낙하시험 침수시험 등이다.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검증에 직접 뛰어든 것은 지난 8월 인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간은 대부분 사고시, 충전시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당시 사고는 지하주차장에 주차돼있던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해 전기차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게 높아졌다.


그간은 제작자 스스로 자동차가 안전기준 적합 여부를 확인해 판매하는 '자기인증제도'로 안전성을 확인해왔지만,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직접 인증 절차를 추가한 것이다. 정부가 자동차 인증 관련 제도를 강화한건 지난 2003년 자기 인증제도가 시행된 이후 20여 년 만이다.


인천 전기차 화재 이후 배터리 제조사 공개 의무 등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정보가 늘어난 가운데, 배터리 인증제의 도입은 소비자들에게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다. 전기차를 판매하는 제조사들 역시 제조사 차원의 인증에서 정부 인증까지 받아야하는 상황이 돼 전기차 배터리 관련 안전 기준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백원국 국토부 제2차관은 "배터리 인증제는 전기차 안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배터리 인증제가 조기에 안착해 국민들이 보다 안심하고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인증제 시행 이후, 인증받은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지를 누구에게 지울 것이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제조사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인증한 후 판매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을 직접 검증한 차량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 제조사 관계자는 "전기차는 안에 들어가는 부품과 배터리 등이 모두 다른 회사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완제품 형태로 브랜드 이름을 걸고 판매되기 때문에 화재가 날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손해가 크다"며 "인증제도가 하나 더 생긴다면 차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증 받은 후 배터리 문제가 생겼을 때 제조사에만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지는것 아니냐"고 말했다.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안전성 시험을 거치는 배터리가 조립을 모두 마친 '팩' 단위라는 점에서도 화재 사고 이후 잘잘못을 가려내기 어렵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배터리 제조사가 처음 제조한 배터리 낱개 단위인 '셀'을 묶어 '모듈'로 만들고, 모듈을 여러개 묶어 '팩' 형태로 만든다.


문제는 제조사에서 셀을 만든 이후 배터리가 팩으로 조립되는 과정에서 취급 부주의 등으로 손상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화재가 났을 경우 팩 단위로 안전성 검증을 하게 되면 팩으로 조립된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인지, 배터리 제조사가 최초 만들었던 셀의 문제인지 파악할 수 없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화재의 상당부분은 배터리에서 연유되고, 배터리 불량 때문에 화재가 났던 경우도 있었다. 배터리 회사들도 자동차 제조사 못지 않게 사회적 책임을 질 수있는 대기업들"이라며 "전기차 화재에 자동차 회사들만 두들겨 맞을 게 아니라, 배터리 제작사에도 책임을 지워야한다. 그러려면 셀 단위의 사전 인증제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배터리 제작사가 아닌 전기차 제조사만 특정해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경우, 배터리 제조사와의 협업도 어려워진다. 안전성 기준이 높아진 배터리를 요구하려고 해도, 배터리 제작사 측에서 배터리 납품을 거절하면 방법이 없다. 향후 인증받은 전기차에서 화재가 난다 하더라도, 배터리 제조사는 전기차 제조사 뒤에 얼마든지 숨을 수 있는 구조라는 의미다.


이 교수는 "단순히 전기차의 부품 하나가 아니라, 배터리 제조사도 같이 책임을 지고 배터리를 감싸는 포장지를 뭘로 할 지부터 다시 연구를 시작해야한다"며 "국토부가 관리하는 범위가 전기차 제조사에서 배터리 제조사까지 넓어져야 정상적으로 인증이 가능해진다. 배터리 제조사가 배터리를 제조할 때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떤 결과가 있었는 지를 국토부에서 요구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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