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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지수 포함 종목 기준·취지 ‘모호’…증권가 ‘설왕설래’


입력 2024.09.26 07:00 수정 2024.09.26 07:00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코스피 시총 상위 10개 중 6개 편입...배당 모범생 KB·하나금융 제외

‘저평가주’ 위한 지수에 PBR 17.97배 ‘고평가’ 한미반도체 포함

엔씨·SM엔터·두산밥캣 등도...해외 IB “편입종목 보고 할말 잃어”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거래소 서울사옥 출입기자실에서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구성 종목 및 선정 기준을 발표하고 있다.ⓒ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지만 모호한 종목 선정 기준과 지수 신설 취지에 대한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다. 밸류업 모범 기업으로 꼽혀온 금융주들이 구성 종목에서 제외되고 주주 환원·저평과와 거리가 먼 종목들은 다수 포진하면서 당초 지수 도입 목적과는 괴리감이 커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오는 30일 도입되는 가운데 선정 기준에 적절성과 신뢰도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배당 정책에 적극적이었던 KB금융·하나금융지주 등이 구성 종목에서 빠지고 고평가론·주주가치 훼손 논란에 휩싸인 종목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린 데 따른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4일 장 마감 후 총 100종목으로 구성된 밸류업 지수를 확정 발표하면서 편입된 종목들이 5단계 검증을 거쳐 선별됐다고 강조했다.


우선 전체 종목 중 시가총액 상위 400위 이내인 종목(시장대표성)을 대상으로 연속 적자나 2년 합산 손익 적자가 아닌 종목(수익성)을 추렸다. 이후 최근 2년 연속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실시(주주환원)하고 주가순자산비율(PBR) 순위가 전체 또는 산업군 내 50% 이내인 종목(시장평가)을 골랐다.


이 요건들을 모두 충족한 기업 가운데 자기자본이익률(ROE) 순위 비율이 우수한 순서로 100곳을 선정했다는 설명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셀트리온, 기아, 신한지주 등 6곳이 밸류업 지수에 포함됐다. 반면 코스피 시총 상위 10개 기업 중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바이오로직스, KB금융, POSCO홀딩스 4곳은 탈락했는데 거래소는 주주 환원과 ROE 등을 고려해 선정한 결과라는 게 거래소의 설명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사 설립 이후 아직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은 만큼 주주 환원 정책이 부족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반면 KB금융은 주주환원 모범 기업으로 꼽혀왔지만 시장평가 기준인 PBR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제외됐다. SK텔레콤과 KT 등 전통적인 고배당주인 통신사도 전부 들어가지 못했다.


당초 시장에선 밸류업 공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금융주들이 대거 포함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지주 등 9개사만 이름을 올렸고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는 고배를 마셨다.


산업 내 PBR 상위 50%의 비교군이 ‘금융·부동산 업종’으로 설정되면서 최근 2년 평균 PBR이 0.2~0.4배대에 불과한 대형 은행들이 기준상으로는 모두 탈락했기 때문이다.


다만 신한지주·우리금융지주는 정식 기준에 미달됐음에도 지난 7월에 발표·공시한 밸류업 계획 덕분에 특례 편입됐다. 지난 23일까지 기업가치 개선 계획을 발표한 현대차와 신한지주, 우리금융지주, 미래에셋증권은 조기 공시 혜택을 받으면서 지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앞서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관련 안내공시를 냈고 조만간 본공시를 할 계획이었지만 지수에서 빠지게 됐다. 아직 본공시를 내지 않았을뿐 밸류업 우수 기업으로 꼽혀온 이들 금융주가 제외되면서 지수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거래소가 밝힌 밸류업의 기본 방향은 주주가치를 존중하는 기업이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며 “주주가치 제고를 실현할 의지와 능력, 계획을 모두 갖추고 적극적인 주주 소통을 이행해온 은행주가 요건상 배제되는 것은 밸류업 지수를 신설한 취지와는 상이하다”고 지적했다.


ⓒ픽사베이

단순히 배당과 자사주 소각 여부만 들여다본다는 것과 조건의 충족 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배당을 지급하거나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들이 배당의 규모와 무관하게 주주환원 조건을 통과하고 있어서다. iM증권에 따르면 지수 편입 종목 100개 중 배당 수익률 2%에 미치지 못하는 종목은 53개로 절반을 넘고 배당성향 20%를 밑도는 종목도 54%에 달한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과거 적자 여부만 판단하면서 성장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거 데이터 사용으로 현재 시장 상황을 잘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은 “개별 기업들을 보면 주주 환원 및 수익성과 거리가 먼 종목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며 “수익성 면에서도 올해 당기순이익 기준 역성장이 전망되는 기업 개수가 17개로 성장률 20%를 하회하는 종목 수 비율이 42%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당초 거래소는 성장성 있는 저평가 종목들을 선정한다고 했지만 밸류업 지수의 평균 PBR은 코스피200지수보다 오히려 높다는 점도 논란을 빚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밸류업 지수의 PBR(2.6배)은 코스피200(2.0배)보다 높고 배당수익률은 2.2%로 코스피200(2.3%)에 비해 소폭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각각 인공지능(AI) 반도체 수혜와 2차전지 열풍으로 고평가론에 휩싸인 한미반도체와 포스코DX가 밸류업 지수에 포함돼 있는 상황이다. 전날(24일) 기준 한미반도체의 PBR은 17.97배, 포스코DX의 PBR은 9.98배에 달한다.


이외에도 밸류업에 걸맞지 않은 종목들이 지수에 다수 진입하면서 거래소를 바라보는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주주환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엔씨소프트와 SM엔터, DB하이텍과 두산 밥캣 등이 대표적이다.


엔씨소프트는 1조원이 넘는 순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주주 환원에 사용하고 있지 않는다는 소액주주들의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고 SM엔터 역시 주주가치 문제로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된 바 있다. DB하이텍은 물적분할을 놓고 소액주주들과 갈등을 빚은 기업이고 두산 그룹의 합병 시도로 주주들의 반발을 샀던 두산밥캣 등도 지수에 편입됐다.


스위스 투자은행(IB)인 UBS는 전날 기관 고객들에게 공개한 투자 노트에서 “100개의 편입 종목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며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가 빠지고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던) 엔씨소프트, SM엔터, 두산밥캣이 편입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UBS는 “시장 참가자들이 (밸류업 지수 관련) 귀중한 조언을 했지만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고 혹평했다.


홍콩계 투자은행 CLSA도 ‘밸류 다운?(Value-dow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투자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구성 종목을 바꾸지 않는다면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 유입이 제한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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