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고·과학고 최근 5년간 중도이탈자 300명 넘어
카이스트에서도 올해만 130명 자퇴하거나 미복학
의대증원 여파로 당분간 중도이탈 늘어날 것 예상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여파로 현재 고교생인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물론 대학생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서도 향후 몇 년간 중도이탈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최근 4년간 영재학교와 과학고에서만 300명이 넘는 학생이 이탈했는데, 의대 증원이 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일 학교 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7개 영재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 제외)에서 전출하거나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총 60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국 20개 과학고의 전출·학업 중단 학생 수는 243명으로 집계됐다. 4년간 총 303명이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떠난 셈이다.
연도별로 보면 영재학교·과학고를 떠난 학생 수는 2020년 79명, 2021년 83명, 2022년 75명, 2023년 66명으로 꾸준히 발생했다. 영재학교·과학고를 떠난 학생은 과거보다 늘어나는 추세다.
그 이전 4년인 2016∼2019년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떠난 학생은 220명으로, 최근 4년 수치보다 37.8% 적었다.
영재학교·과학고를 다니다 그만둔 학생이 늘어난 것은 재학생에게 의대 진학 불이익이 강화된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영재학교와 과학고에서 의대로 진학할 경우 장학금을 회수하거나 추천서를 금지하는 등 제재가 강화된 여파로 보인다.
영재학교·과학고는 졸업 후 의대 진학 학생에 대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불이익을 강화해왔다. 2018년 일부 영재학교는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회수하고, 추천서를 작성하지 않는 불이익을 줬다. 2022학년도에는 이 조치가 더욱 강화돼 전국 영재학교와 과학고 입학생은 의대 진학 제재 방안에 동의한다고 서약해야만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의약학 계열 진학을 희망하면 진로·진학 지도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의대에 진학하려는 영재학교 학생은 교육비와 장학금을 반납하는 한편 일반고 전출을 권고받고, 학교생활기록부에도 학교 밖 교육·연구 활동을 기재할 수 없도록 했다.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려면 영재학교 출신의 장점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과학고 역시 의대에 진학하면 졸업 때 수상이나 장학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의 조치를 감수하게 됐다.
카이스트 역시 올해 자퇴 또는 휴학 후 미복학 등으로 중도 이탈한 학생은 130명으로 전년도 125명보다 늘었다. 카이스트에서 최근 5년간 중도 이탈한 학생은 2019년 76명, 2020년 145명, 2021년 100명 등으로 576명에 달한다. 카이스트 측은 자퇴 원인을 분석하지 않기 때문에 이유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입시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과학고 졸업생이 카이스트에 진학한 후 자퇴하는 경우에는 교육비 환수 등의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이탈 학생 중 '반수'를 선택해 의대 진학을 노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영재학교·과학고 중도 이탈 학생의 대부분은 의대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들로 보인다"며 "지난해 지방거점국립대 의대 진학생 중 11명이 검정고시 출신이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영재학교·과학고에 진학했다가 맞지 않아서 자퇴한 학생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영재학교·과학고 졸업 후 카이스트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 진학한 이후 자퇴하고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이들에겐 불이익이 없다"며 "(영재학교·과학고가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정부가 이공계 집중 육성정책, 취업 혜택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