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데일리안, 서울 시내 4대 고궁 외벽 직접 순회하며 상태 점검…관리상태 여전히 부실
덕수궁, 관리상태 비교적 양호…북쪽·서쪽 벽면 경비인력 상주, 남쪽 벽면 방호상태 허술
경복궁, 남쪽은 양호하지만 동쪽 건춘문 방면 CCTV 단 1대도 설치돼 있지 않아
창덕궁 외벽, 상태 가장 심각…인근 거주민들 "창덕궁은 문화재 아니라 동네 담벼락"
지난달 16일 경복궁 서쪽 영추문에 스프레이 낙서 테러가 벌어진 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서울 시내 주요 고궁들에 대한 관리 상태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관리 상태라면 언제든지 다시 유사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문화재 관리 당국은 CCTV를 서로 사각이 없게 효율적으로 설치하기 위해선 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곧바로 설치할 수 없는 상황이고, 어떻게 훼손됐느냐에 따라 복구 방법의 차이가 있고 전문가 판단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고궁은 엄연한 문화재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필요하고, 당국도 문화재를 개방한다는 것과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다른 얘기임을 분명히 알고 계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1일 데일리안이 서울 시내 4대 고궁(경복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의 외벽을 직접 순회하며 관리 및 방호 상태를 점검한 결과, 낙서 등 훼손행위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질만 한 곳은 덕수궁 동쪽과 북쪽 벽면, 경복궁 남쪽 벽면, 창덕궁 남쪽 벽면 등 일부에 불과했다. 다른 곳들에는 CCTV가 거의 설치돼 있지 않았고, 야간에는 인적도 드물어 범행이 또 발생한다고 해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였다.
◇덕수궁, 남쪽 벽면 350m 길이지만 CCTV는 고작 1대
시청역에 인접한 덕수궁의 경우 유동 인구가 많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서 그런지 관리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특히 동쪽 벽면에서는 인근 대한문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시청역 3·4번 출구와 인접해있어 테러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북쪽과 서쪽 벽면은 주한영국대사관 및 주한미국대사관저가 인접해있어 경찰 경비인력이 24시간 상주해있다.
그러나 남쪽 벽면의 경우 방호상태가 매우 허술했다. 대한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면 나오는 남쪽 벽면은 그 길이가 약 350미터(m)에 달했다. 그러나 직접 살펴본 결과 해당 구간에 설치된 CCTV는 서울시의원회관 주차장에 설치된 1대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우측으로 치우치게 설치돼 있어 CCTV가 촬영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보였다. 이런 지점에 경복궁 영추문 테러와 같은 유사 범행이 일어난다면 용의자 추적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경복궁, 남쪽은 양호하지만 동쪽에는 CCTV 전혀 없어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에는 관광객들이 많아 방호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광화문 지붕 양 쪽에 사각이 발생하지 않도록 CCTV가 설치돼 있었으며, 상시 경비인력도 배치돼 있었다.
그러나 바로 동쪽인 건춘문 방면은 CCTV가 단 1대도 설치돼있지 않았다. 경복궁 남동쪽 모서리에서 동쪽 맨 끝인 국립민속박물관 입구까지 거리는 약 400m이다. 그러나 해당 구간에는 벽면을 감시하는 CCTV가 전혀 없었고, 민속박물관 버스정류소에 도로 방향으로 설치된 교통상황 관제용 CCTV 1대가 전부였다. 서쪽 영추문 테러 피의자들도 이런 허술한 방호상황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관측됐다.
◇창덕궁, 서쪽 벽면에 훼손된 채 오래 방치된 부분도 있어
서울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궁궐이자 유일한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의 외벽은 상태가 가장 심각했다. 일제시절부터 궁궐 담장을 따라 주택가가 형성된 곳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서쪽 벽면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궁 담벼락 옆에 어린이들 장난감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가 하면, 벽면의 석회가 떨어져 나간 부분을 시멘트로 엉성하게 떼우고 꽤 넓은 벽면에 페인트가 묻은 채로 장시간 방치된 흔적까지 발견됐다. 인근 거주민들조차 창덕궁을 문화재로 인식하기보다는 '동네 담벼락'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최근 안국동과 혜화동을 잇는 율곡터널을 서울시가 재공사하면서 창덕궁과 창경궁의 일부 외벽을 새롭게 쌓아올려 산뜻한 산책로로 조성한 것은 좋은 모습이었다.
◇문화재청 "CCTV 방재시스템 설계 중…복구는 전문가 판단에 따라"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 궁능관리본부 조은경 복원정비과장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총 110대의 CCTV를 4대 궁궐 주위에 체계적으로 설치할 예정이고 경복궁은 올해, 나머지 3개 궁은 내년까지 설치를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CCTV를 왜 곧바로 설치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오는데 CCTV를 서로 사각이 없게 효율적으로 설치하기 위해서는 설계가 필요하고 지금 그 설계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 과장은 "훼손된 부분을 발견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당장 복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어떻게 훼손됐느냐에 따라 복구방법에 차이가 있고 복원 및 보존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문화재 전문가 "손상 위험 있는 곳 적극적으로 접근 차단해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장을 지낸 조성택 교수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고궁은 엄연한 문화재임에도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장소가 되다 보니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며 "문화재 관리당국도 국민들이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일본의 오사카성, 인도의 타지마할 같은 곳은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감에도 거의 손상없이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출입가능 구역과 금지구역의 경계가 명확하고 손상될 가능성이 있는 장소는 아예 접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숭례문 화재의 경우를 봐서도 알겠지만 문화재를 개방한다는 것과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라며 "문화재 관리 당국이 관람은 적극적으로 권장하되 필요 이상의 접근과 출입은 분명히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