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평균 5% 웃돌다 이젠 4% 중반
각종 우대 할인 폭 0.8%P 넘게 확대
정부 압박에 대출자 부담 완화 효과
국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이자율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5%를 웃돌다 최근에는 4%대 중반까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서 동결을 이어가고 있는 기준금리와 대비되는 흐름이다.
이는 이런저런 조건에 따라 이자율을 깎아주는 우대금리가 확대된 영향으로, 정부의 상생금융 요구가 은행권을 압박하면서 대출자의 실질적인 부담 완화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22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9월 은행들이 신규 취급한 만기 10년 이상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금리는 4.57%로 올해 1월보다 0.69%포인트(p) 떨어졌다.
5대 은행 중에서는 NH농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이 4.29%로 같은 기간 대비 0.39%p 하락하며 제일 낮았다. KB국민은행 역시 4.45%로, 하나은행은 4.49%로 각각 0.78%p와 0.16%p씩 해당 수치가 떨어졌다. 우리은행도 4.52%로, 신한은행은 4.58%로 각각 0.65%p와 0.63%p씩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낮아졌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이자율 하락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고금리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생긴 변화이기 때문이다. 올해 내내 역대급 고점을 찍고 유지되고 있는 기준금리의 상태를 감안하면 대출 이자율이 더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후 지금까지 동결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이는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매기는 우대금리를 높이고 있어서다. 이자 할인 폭이 커지면서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적용되는 금리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사 대상 기간 동안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에 책정한 가감조정금리는 평균 2.02%로 0.81%p 높아졌다. 가감조정금리는 급여 이체나 카드이용 실적, 비대면 방식 등에 따라 감면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지점장 전결 권한으로 할인되는 금리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출 상품의 최종 이자율은 시장 원가에 해당하는 기준금리에 각 은행이 붙이는 영업비용과 마진을 담은 가산금리를 더한 뒤 마지막으로 우대금리를 빼서 정해진다.
은행권이 이처럼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이자 할인을 확대하며 금리를 끌어내린 배경에는 정부의 입김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높은 금리와 경기 침체가 맞물려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는 와중 은행권이 이자 장사로 배를 불리는 건 적절치 않다며, 금융당국이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어서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제는 윤석열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서 은행권을 향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탓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참모진이 최근 민생 현장을 찾아 청취한 내용을 소개하며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북 카페에서 주재한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며 "우리나라 은행의 이런 독과점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든지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입장이 워낙 완강한 만큼 은행들로서는 어떻게든 서민의 금융비용 부담 경감을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며 "다만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 상 대출 원가 부분에 손을 대긴 어렵고, 우대금리를 넓히는 방식이 현실적인 접근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