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장중 1300원 돌파…원자재 및 해외 투자 비용 상승 전망
달러 결제 많은 항공사 등 산업계 타격…기업들, 총수 주재 회의로 대응 고심
원·달러 환율이 23일 장중 1300원을 돌파하면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의 긴축 움직임과 세계 교역량 위축이 이같은 고환율 기조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이미 러시아발 공급망 위기와 고유가, 고금리로 부담이 적지 않은 기업들은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타개책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이전 보다 원자재 비용이 늘어나고 해외 현지 투자금액도 상승하는 등 당분간 수익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 대부분은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호재 보다는 악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전에는 제품을 같은 달러화 가격에 팔아도 원화로는 이익이 늘어나는 효과가 뚜렷했지만 지금은 원자재, 에너지, 곡물 등의 가격이 워낙 가파르게 올라 예전과 같은 이익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원자재 수입 비용은 올해 초부터 고공행진 중이다.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동시 상승하면 비용 부담은 배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겨 소비를 줄이고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항공업계는 이미 고환율로 타격을 입고 있다. 유류비를 비롯해 항공기 대여(리스)료, 영공 통과료 등을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로, 환율 상승분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한항공은 분기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환손실이 410억원 발생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환율이 10% 상승하면 세전 순이익이 3549억원 감소한다고 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에서 벗어나 여객수요 회복 단계로 접어든 상태에서 고환율, 유가 상승등으로 인한 영업비용 증가가 우려된다"면서 "이는 해외여행 심리 위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도 보인다"고 우려했다.
원유를 달러로 수입하는 정유업계도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한다. SK이노베이션은 분기보고서를 통해 환율 5% 상승 시 법인세차감전 순이익이 334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달러로 수입하기 때문에 원화가치 하락은 외화자산과 부채 가치가 변해 정유업계에 환차손을 야기한다"면서 "다만 원유 수입 중 40%를 수출하기 때문에 환차손 영향은 일부 상쇄된다"고 설명했다.
철강사들도 철광석, 석탄 등 주요 원재료를 달러로 결재하고 있어 이익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석유화학·조선업계 등은 환율 변동에 대응해 환헷지(Hedge) 등 위험회피 장치를 두고 있지만 원자재 가격이 워낙 가파른 탓에 효과는 어느 정도 상쇄될 것으로 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들은 건조대금을 달러로 받고 환헷지를 하기 때문에 당장 큰 영향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원자재 가격 상승이 자재값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관계자는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시 영업이익에는 플러스 효과가 발생하지만 엔화 등 다른 통화 결재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익만 본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늘어나는 원자재 부담 외에 현지에 투자하는 설비 등의 비용 상승으로 수익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그룹들은 배터리, 전기차 등을 중심으로 설비 신증설에 나서는 상황으로 환율이 오르는 만큼 추가 자금 투입이 예상된다. 국내에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도 수입 원자재 가격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르는 환율·금리·물가에 주요 기업들은 총수가 직접 참여하는 회의를 열고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역대급 비상 사태에 대응할 해결책을 다각도로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지난 20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주재로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연 데 이어 21일부터 ‘2022 상반기 글로벌 전략협의회’에 돌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 심화에 국내·외 경제 악화 등을 고려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지난 17일 최태원 회장 주재로 '2022년 확대경영회의'를 가졌다. 산업계 위기감이 팽배해진 만큼 회의 무게감도 남달랐다는 후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오는 7월 '해외법인장 회의'를 열고 시장 전략 재점검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