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경영평가 대상 공기업
역사·규모·역할 모두 다르지만
획일적 평가에 기관 본연 기능 소홀
정부가 지난 20일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이하 경평)를 발표하자 한 준정부기관 관계자는 “전혀 다른 기관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데 그게 과연 제대로 된 평가라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단순히 평가 점수가 낮은 기관 관계자의 변명으로 치부하기엔 설득력이 강하다. 40년 가까운 경평 역사 동안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해온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경평은 1984년 제도 도입 이후 여러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와 관계 기관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 자율성과 함께 기관별 특성을 반영한 정확한 평가는 아직도 계속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2016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제도 실증 연구 보고서에서 “(경영)평가 결과가 해당 기관의 공공성이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노력과 상관없는 비본질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자산의 크기가 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며 “자산 규모가 큰 공공기관이 중소규모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공공기관에 비해 유리한 결과를 얻는 것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해당 기관이 오래됐을수록, 즉 업력(業歷)이 쌓일수록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다”며 “경영평가 결과가 기관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과 상관없는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며 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투자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박정수 전 센터장 또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미션 및 목표가 다르고 해당 공공기관이 속한 산업 특성에 따라 경쟁 및 규제 등 경영 환경적 요소가 매우 다양해 획일적인 성과 측정시스템 적용에 어려움이 따르고 이로 인해 상대평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발간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에 관한 비판적 분석 보고서’도 비슷한 의견이다. 보고서는 공기업 내 일부 기관 간 규모 차이가 커서 소형기관 불만이 여전히 큰 편이라고 분석했다. 경평이 기관에 대한 절대평가 형태를 띠고 있으나 유형 내에서는 상대적 분포를 고려하기 때문에 기관으로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실제로 기관 규모에 따라 경영활동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그 결과가 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에너지 관련 공기업과 주택보증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감정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동일한 평가지표로 경쟁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경평 분석 방법이) 부적절하다고 인식하는 기관들은 대부분 매출 규모가 크고 인원이 많은 기관과 같은 유형에 속해 있는 규모가 작은 기관들”이라며 “이는 같은 유형 내에서 경쟁하는 상대기관의 규모·예산·업무 특성 등이 다른 기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와 달리 영국이나 프랑스, 스웨덴과 같은 주요국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기관 유형에 따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반면 우리는 5개 경영평가 대상(시장형 공기업, 준시장형 공기업,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기타(강소형)공공기관)에 대해 가중치만 다를 뿐 모두 대동소이한 평가 항목을 사용한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에 대한 획일적 평가는 결국 해당 기관이 해야 할 본연의 기능에 소홀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평가에 매몰돼 장기 정책은 뒤로하고 성과 위주 단기 사업만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준정부기관을 따로 나눠놨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기업 중심으로 경영평가가 이뤄진다”며, “준정부기관은 돈 버는 기관이 아니고 정부 사업을 위탁받아서 수행하는 기관인데, 평가지표는 공기업과 비슷하게 수익성이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진짜 문제는④] 공공기관 경영평가, 강압성 벗고 공공성 입혀야…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