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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소송 맛집이래"…임금피크제 판결이 불러올 파장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2.05.30 11:07 수정 2022.05.30 11:14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2016년 정년연장 당시 보완책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근로자 승소 판례로 줄소송 우려…정부지침-법적판단 불일치

고령화 시대, 추가 정년연장 논의에서 기업 저항 커질 듯

지난해 11월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노인 구직자들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대표적인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인 한국GM의 전 CEO 카허 카젬 사장은 한국을 떠나기 직전인 4월 27일 ‘제20회 산업발전포럼’에 참석해 한국에 대한 지속적 투자 결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불확실한 노동 정책’과 ‘파견 및 계약직 근로자 관련 불명확한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를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 근로자 불법파견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2019년 말부터 2년 넘게 출국정지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한국GM은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로부터 현장 실사를 받고 협력사로부터의 근로자 파견이 합법적 도급운영이라는 행정적 판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 지침대로 인력을 운용했지만 결과물은 줄소송과 검찰 수사였다.


지난 26일 이뤄진 대법원의 ‘임금피크제는 연령차별금지에 위반돼 무효’라는 판결은 정부 지침과 법적 판단의 불일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 한국GM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임금피크제는 지난 2016년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늘리면서 그에 따른 기업 임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시된 보완책이었다. 당시보다 3년 앞서 개정된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은 정년 60세 이상 확대와 함께 노사에게 임금체계 개편에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년 연장이 기업의 경영난이나 청년 채용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용이 연장된 기간 동안 임금을 조정해야 한다는 건 당시 일종의 사회적 합의였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기업들은 임금피크제발(發) 법적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물론 대법원이 모든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본 것은 아니다. “개별 사건별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차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효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소송 사태에 대한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통상임금 소송이나 불법파견 소송에서 그랬듯, 일단 승소 케이스가 발생하면 ‘소송 맛집’이란 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승소하면 소급분까지 단번에 큰 돈을 손에 쥘 수 있고, 설령 패소한들 큰 손해는 없으니 해당 사안에 연관된 근로자들로서는 소송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지금이 추가적인 정년 연장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는 점이다. 기대수명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연령도 단계적으로 늦춰지면서 60세가 넘었다고 은퇴해 소일거리로 여생을 보낼 수는 없게 된 이들이 상당수다.


윤석열 정부 출범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인구와 미래전략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정년연장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관건은 2016년 정년연장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임금부담 증가에 따른 경영난과 청년채용 위축이다. 부작용을 줄이려면 임금피크제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관련 줄소송 사태로 기업들이 이 제도를 ‘우환거리’로 인식한다면 정년 연장에 대한 저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는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퇴직을 앞둔 수많은 근로자들이 정년연장의 꿈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의 보완책이자 추가적인 정년연장 논의를 이끌 수 있는 열쇠다. 소수의 ‘소송 전리품’을 위해 소멸시키기엔 사회적 파장이 너무 크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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