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캐릭터 20년 넘게 해 본 적이 없어…기존 이미지와는 다르게, 관객 분들에게 담백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거장들과의 작업은 행운…밑천을 다 보이게 되지만, 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배우 박해일이 박찬욱 감독과 만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형사라는 캐릭터도 박해일에게는 처음이었지만, 그간의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형사를 탄생시키며 신선함을 남긴다.
24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칸 모처에서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연 배우 박해일이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해일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예의 바르고, 깔끔한 형사 해준을 연기했다. 다소 거친 면모를 지닌 그간의 한국 영화 속 형사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시선을 이끈다.
“(장해준 만의) 말투가 있을 수도 있고, 아주 클래식한 면모도 있었다. 또 어떨 때는 현대인의 모습도 필요했던 것 같다. 형사라는 캐릭터를 20년 넘게 해 본 적이 없다. 억울한 용의자의 느낌이나, 무능한 왕은 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친절하고 매너 있는 공무원 역할은 처음이다.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게, 관객 분들에게 담백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변화’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이 구현한 세계 안에서 그에 어울리는 형사 캐릭터를 연기하려 했고, 이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모습들이 나올 수 있었다.
“작정을 하고 변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박찬욱 감독님이 박 감독님의 세계 안에서 제대로 된 놀이터를 만들어주셔서 바이킹도 타보고, 롤러코스터도 한 번 제대로 타봤다. 옆에 탕웨이 씨도 만나서 재밌게 살아가는 희로애락을 느껴보자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호기심과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고민들도 있었다. 해결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었지만, 하나하나의 물음들에 감독님이 인자하게 열쇠들을 알려주셨다. 그런 문에는 이런 열쇠를, 이런 번호키를 눌러보라고 해주셨다. 정답이 있지는 않지만, 힌트들이 있었다. 그런 걸 만들어가는 재미있었고, 그런 에너지가 있어 좋았다.”
형사 장해준만의 ‘기품’을 끌어내기 위해 인간 박해일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단순히 연기만으로는 캐릭터가 가진 분위기를 온전히 표현해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물론, 여러 스태프들과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태도만 가진다고 내 캐릭터가 그렇게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가진 내 기질의 일부가 무엇인지 나 자신부터 돌아봤다. 내가 가진 건 여러 가지가 있지 않나. 나만의 기질과 장해준이 잘 매치가 되는 건 뭘까 돌이켜봤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장해준스럽게 같이 만들어 나갔다. 감독님 포함해 함께 오래 해 온 아티스트들이 같이 만들어갔다. 수작업을 하듯이, 바느질을 하듯이, 그렇게 한 땀 한 땀 만들어주신 게 있다. 가지고 있는 걸 최대한 활용해 ‘장해준스러움’을 만들어 봤다.”
물론 형사 캐릭터를 위한 기본적인 준비도 필요했다. 억지로 거친 면모를 만들어내려고 하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액션 등을 소화하기 위한 체력 훈련 등을 거치며 현실감도 놓치지 않았다.
“단백질 몸을 만들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런 기본적인 뼈대부터 다르게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극 중에서 많이 뛰어다녔다. 범인을 추적하는 장면이 있는데, 무시무시한 계단을 뛰어갔어야 했다. 현장에서 보고 너무 걱정이 되더라. 그리고 잘 해내고 싶었다. 촬영 이틀 전 미리 내려가서 현장을 봤다. 계단이 정말 어마어마하더라. 바로 체육복을 갈아입고, 매니저와 올라 가보고 뛰면서 초도 재보곤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많이 걷고 뛰었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부터 임상수 감독, 장률 감독, 박찬욱 감독까지. 여러 거장들과 함께한 경험은 박해일에게도 특별했다. 여전히 거장들이 자신을 자주 캐스팅하는 이유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저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감사를 표했다.
“되게 행운이었다. 그렇게 만나는 게 쉬운 건 아닌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과 작업을 하면 이런 부분들이 있더라. ‘많지 않은 나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분들이 해오신 방식대로 어떻게 내 것을 취하실까’라는 게 가장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밑천을 다 보이게 되더라. 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고마운 거다. 나도 내 나름대로 밭을 갈듯이 일궈왔다고 생각은 한다. 그 농작물이 얼마나 건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준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