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분야 반도체 ‘술술’…5G·망사용료엔 ‘진땀’
‘특허료 이익 분배·이해충돌·증여세’ 집중 추궁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말 그대로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 현안에 대한 이해도와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자리가 아닌 신상 검증에 치중됐다.
여야 의원들은 5세대 이동통신(5G)과 망 이용대가 등 산업계 현안보다는 이 후보자의 반도체 특허 수익을 둘러싼 이해충돌 논란과 증여세 탈루 등을 중심으로 날선 질문을 이어갔다.
이 후보자는 30여년간 몸담은 반도체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과시하며 자신 있는 목소리를 낸 반면, ICT 현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며 산업 이해도가 낮다는 지적을 받았다.
‘벌크 핀펫’ 화두…이해충돌·수익분배 논란 해명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그가 특허를 출원한 ‘벌크 핀펫(Bulk FinFET)’ 기술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예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가연구개발로 진행한 기술임에도 수익이 개인인 이 후보자에게 돌아가는 등 관련 이익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다고 추궁했다.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이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인 이 후보자는 지난 2001년 원광대에 재직하던 시절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와 공동연구로 벌크 핀펫 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은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표준 기술로 꼽히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로 인텔, 삼성 등 유수의 반도체 기업이 채택한 ‘업계 표준’으로 평가된다. 이 후보자가 신고한 재산 160억8290만원 중 상당 부분 역시 이 기술 특허료가 차지했다.
이 후보자는 “발명자가 아닌 사람이 저자로 들어가면 특허가 무효가 된다고 들었고 이 과정은 미국 재판과 특허 심결에서 문제가 없다고 결정 난 바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증여세 탈루, 세무 지식 미흡…가족 동반 출장 ‘사과’
증여세 탈루 의혹에 대해서는 “세무 지식이 없고 일에 집중하다 보니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는 10여년간 증여세를 납부해오지 않다가 후보 지명 후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2012년 11월과 12월 아파트 구매 지분 5억4000만원과 예금 6억원 등 11억4000만원을 부인에게 증여했으나 장관 지명 당시까지도 부부간 증여를 신고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장관 지명 3일 만인 지난달 13일 증여세 납부 신고를 하고 다음날인 14일 증여세를 납부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통 부부간 지분을 나눠서 신고할 때는 반반으로 하는데 (이 후보자는) 40대 60으로, 부인 지분을 40으로 했다”며 “공동으로 할 경우 증여세 세액공제한도인 6억원을 넘기 때문에 이렇게 나눈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후보자는 “배우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법무사에게 일임해 시키는대로 했다”고 답했다.
‘아빠 찬스’ 의혹도 적극 해명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대 공대 교수로 있으면서 학회 참석차 해외 출장을 가면서 49차례 중 2번 가족을 동반해 특혜를 누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이 후보자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일이었고 가족을 데리고 외국학회에 간 건 제 불찰이라고 생각한다”며 “유념하겠다”고 사과했다.
현재 보유 중인 12억원 이상의 ‘GCT 세미컨덕터’ 주식에 대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자는 기술 특례 상장을 위한 협의 중인 회사에 거액의 투자를 했다”며 “윤석열 당선인의 표현을 빌려, 이는 장관이 된다고 해도 날아갈 사안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후보자는 “GCT 세미컨덕터는 대학원 후배가 설립한 기업으로 유능한 후배들을 믿고 해당기업에 투자했다”며 “현재는 전환사채에 대한 주식 전환 옵션을 포기해 채권만 보유하고 있어 이해충돌 소지는 없다고 사료된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에 기술 자문 역시 전혀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명불허전’ 반도체 전문가…산업 현안은 ‘공부중’
이처럼 개인의 신상 검증에 대부분의 질문이 할애되면서 ICT 현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망 사용료와 국민 불만이 높은 5G 관련 등의 질의가 나왔으나 이 후보자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변재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권 초기 장관은 새로운 정부의 5년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과연 후보가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의문을 표했다.
변 의원이 5G, 6세대 이동통신(6G)과 28기가헤르츠(GHz) 주파수 대역, 디지털 플랫폼, 망 사용료 문제 등 과기정통부 장관이 알아야 할 전문 사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이 후보자에게 질의하면서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이 후보자는 즉시 답하지 못했다.
이에 변 의원은 “6G 상용화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떤 전후방 산업연관효과가 있느냐”고 재차 물으면서 “(이 후보자는) 단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 후보자가 5G에 대해 “커버리지 문제가 있다”고 답하자 변 의원은 “5G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전후방 산업연관효과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전방은 삼성전자가 장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화웨이에 그대로 밀렸다. 후방은 무슨 연관 효과가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 후보자가 답변을 이어가지 못하자 변 의원은 “산업이 뭔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 후보자가 살아온 것을 보면 반도체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성과를 인정받고 계신 것 같다”며 “한편으로는 연구분야에서 오히려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망 이용대가 지불을 회피하고 있는 것에 대한 후보자의 생각을 묻자 이 후보자는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요인이 있어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회피했다.
이에 전 의원은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서 (망 이용대가를) 안 내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고 간과할 수 없다”면서 “장관이 파악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원욱 과방위원장도 “전혜숙 의원이 질의한 망 이용대가 문제에 대해 업무 파악이 안 된 건가, 아니면 답변이 어려운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이 후보자는 “나름 공부했으나 여러가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 부분이 있다”며”우려에 대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이 후보자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시스템으로 정책을 전환해 민간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30여년간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개발과 산학협력 인재 양성에 전념해 왔다”며 “연구개발(R&D), 인재양성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시대 기술패권 경쟁과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 ▲초격차 기술 확보와 기초연구 강화 ▲디지털 플랫폼 정부 실현 ▲국가·사회 전반에서 디지털 혁신의 전면화 등 4가지 중점 정책방향을 소개했다.
이 후보자는 “초연결 시대, 기존의 질서가 뒤바뀌며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든 시대가 됐다”며 “과학기술과 ICT를 다시 혁신하고 이를 통해 기술패권 경쟁과 디지털 대전환에 선도적으로 대응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높여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