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한-중·일 노선 운임담합 제재 돌입
부처 간 견해차로 해운법 개정은 ‘답보’
업계 “법에 문제 있다면서 왜 제재하나”
공정거래위원회가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한국~동남아 해운 운임담합이 한국~중국, 한국~일본 노선으로 옮겨붙었다. 해운 담합 경우 위법성 여부에 대한 다툼과 해운법상 담합을 허용하는 측면 등을 놓고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한~동남아 노선 제재와 똑같은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28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한~중, 한~일 노선에서 화물 운임 등을 담합한 20개 해운업체에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엔 이들 해운업체가 약 15년간 담합을 통해 운임을 인상하면서 해운법에서 정한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신고 및 화주 단체와의 협의’라는 절차상 요건을 지키지 않았다는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노선 제재 대상에는 10여 개 중국 선사를 포함하고, 일본 노선에는 1개 일본 선사를 포함하고 있다.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전원회의 심사는 한~중 노선 경우 다음달 27일, 한~일 노선은 다음달 28일 열릴 예정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1월 한~동남아 노선에서 15년간 담합한 23개 선사에 총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 일본, 중국 노선 과징금 규모는 관련 매출액 규모가 작은 만큼 앞서 동남아 노선에 부과된 962억원에 비해서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정위의 한~중, 한~일 노선 운임담합 제재 결정에 해운업계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동남아 노선 심사에서 불거졌던 제도적 허점이 여전한 상태에서 한~중, 한~일 노선에 대한 제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해운협회 관계자는 “이번에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사실상 내용이 지난번 한~동남아 때와 거의 같다”며 “이 때문에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불만은 한~동남아 운임담합 논란 당시 드러난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정치권과 관련 부처의 제도 개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정위와 해양수산부는 운임담합 관련 해운법 개정을 위한 이견을 조율하고 있지만 수개월째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해수부는 지난 1월 공정위가 한~동남아 노선 운임담합에 대해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자 설명자료를 통해 정면 비판한 바 있다. 당시 해수부는 국내외 선사들의 운임 결정 행위에 대해 해수부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법에 인정한 공동행위로 인정하지 않은 점에 대해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해수부는 “국내외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던 공동행위에 대해 정부나 화주 단체의 요청이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신고했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사안은 해운법상 공동행위의 신고 범위 등에 대한 관계부처 간 입장 차이에서 기인한 문제”라며 “국가 기간산업에 회복이 불가능한 제재를 부과하기보다는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제도를 보완해 원만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해수부 비판에 공정위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수부 주장은 전원회의 심사 과정에서 이미 반박한 내용인 만큼 별도로 대응할 이유가 없다”며 “다만 이번 논란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는 (해수부와) 실무진 협의를 통해 개선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와 해수부가 협의를 통해 개선책을 찾겠다고 한지 두 달이 넘었으나 사실상 협의는 답보 상태다. 일각에서는 양측이 각자 힘겨루기를 하는 탓에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탓에 해운법 개정도 늦어지고 있다. 해수부는 현재 국회와 함께 해운법상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소급적용 조항이 포함된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공정위의 제재가 무력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운법 개정 방향은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의 관계를 보다 알기 쉽게 명확히 하는 것”이라며 “기존 법률 체계에서도 해운법 요건을 지키지 않은 운임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법적 흠결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해운협회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해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공정위도 스스로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운임담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제재를 강행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한~동남아 노선에 이어 한~중, 한~일 노선마저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되면 결국 해운업계는 파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