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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총재 지명 둘러싼 '엇박자'에 文·尹 갈등 악화일로


입력 2022.03.24 02:00 수정 2022.03.23 23:36        최현욱 기자 (hnk0720@naver.com)

신임 한국은행 총재 지명 배경 두고

靑·尹 입장 엇갈리며 갈등 빚어져

"尹 측 의견 들어" vs "협의 없었다"

집무실 이전 갈등에 인사 충돌까지…尹 취임 전 회동 무산 가능성도

문재인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청와대·데일리안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측이 주요 보직 인사권 행사를 놓고도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사상 초유의 '신구 권력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갈등이 지속될 경우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이 무산된 채 윤 당선인의 공식 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양 측의 갈등은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한국은행 총재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하면서 불거졌다.


오는 31일 이주열 현 총재의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후임자 지명이 불가피했지만, 정권 이양기인만큼 관례상 필요한 절차였던 청와대 측과 윤 당선인 측의 협의가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협의가 있었다는 청와대 측의 입장과 일방적 인사였다는 윤 당선인 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이다.


청와대는 이창용 국장의 지명 소식을 알리며 "한은 총재의 직위 공백을 최소하하기 위해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발표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선인 측은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인사를 추천한 바가 없다"고 즉각 반박에 나섰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 후보자 내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서울 종로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상호 협의나 절차가 전혀 없었다"며 "발표 10분 전에 전화가 와서 발표한다고 통보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발표하려면 마음대로 하라, 우린 추천하고 동의한 적 없다고 한 것"이라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가 발표 전 이 후보자에 대한 의사를 윤 당선인에 물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장 실장은 "'이창용 씨 어때요'라 해서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한 걸 당선인 의견을 받았다고 하는 게 납득이 가느냐"고 일축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 또한 청와대의 이 후보자 지명 소식을 듣고 "인사권자인 내 결재가 없었는데 장제원 실장이 추천을 한 것이냐"며 의아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청와대는 당선인의 동의를 충분히 구했고, 오히려 최근 불거진 신구권력 갈등을 타개하기 위해 윤 당선인과 공감대를 형성한 인사를 후보자로 지명했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에 장제원 실장은 "동의할 수 없다"며 "궁극적으로 감사위원 임명에 앞선 명분쌓기용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장 실장의 언급대로 향후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취임 전 인사권을 행사할 때마다 추가적인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지난 16일 한 차례 회동을 계획했다 무산된 원인으로 한은 총재 인선과 더불어 감사원 감사위원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인선 문제가 꼽힌 바 있다.


실제 2명이 공석인 감사위원 인선을 놓고 문 대통령 측과 윤 당선인 측의 신경전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현직 감사위원 5명 중 3명이 '친여 성향'으로 분류되기에, 문 대통령이 공석에 자신에 우호적인 인사를 인선한다면 윤 당선인의 임기 시작 이후에도 친야 다수의 감사위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감사위원 인선에 대해 "궁극적으로 당선인과 함께 일할 분들 아닌가, 임명을 하고 떠나겠다는 것은 알박기"라며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뭐가 그렇게 두려워 이렇게까지 하며 갈등을 부추기고 강행하려 하는가"라 비판했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정치권에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완전히 무산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에 더해 인선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불거지며 갈등의 골을 회복하기가 난망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탓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요 부분에 대해 합의가 안 된다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굳이 만날 이유도 필요도 없다"며 "중요 부분에서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만나 얼굴만 붉히고 헤어지면 대통령동 당선인도 타격"이라 말했다.


또 "이 정도면 (문 대통령 측의) 대선 불복 아니겠나"라며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해 지방선거에 이용하겠다는 뜻 아니겠나"라 질타를 쏟아냈다.


양측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권 이양기에 각자의 진영논리를 고집하며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날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이창용 후보자 지명 문제에 대해 "형식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인데 (윤 당선인 측이) 이렇게 시비를 걸 문제인가 싶다"며 "꼬는 것 자체가 자꾸 시비거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집무실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진 전 교수는 "당선자가 원한다면 최대한 편의를 봐줘야 된다. 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줬으면 좋겠는 것"이라며 "윤 당선인도 고집을 조금 꺾고 청와대 들어가 업무를 보면서 TF팀을 만들어 '1년 안에 옮기겠다'고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그것도 사실 이해가 잘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현욱 기자 (iiiai072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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