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들 규제 완화, 미래사업 인프라 구축 등 당부
중대재해처벌법 수정, 대-중소기업 양극화 등 현안도 언급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 6단체장들과의 회동 자리를 마련하며 새 정부 출범 후 재계와 활발히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재계도 기업 친화적 정부의 출범에 대해 큰 기대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됐던 현안 해소에 윤 당선인이 적극 나서줄지 관심이다.
윤 당선인은 21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오전 11시30분부터 1시간 반 가량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참석했다.
이날 경제단체장들은 규제 완화와 미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기업 환경 개선에 힘써줄 것을 요청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해소 등 경제단체별 중점 현안도 언급했다.
최태원 '정부-민간 팀플레이' 강조…"혁신전략 협의체에 민간 참여" 요청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이 ‘민관 팀플레이’를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성인께서 진행하시는 민간 주도, 역동적인 혁신 성장을 위해 투자 성장 요소를 자유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민관의 협동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소통 플랫폼의 일원화’와 ‘민관 협력을 통한 경제 안보 강화’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소통 플랫폼과 관련해서는 “대한상의에서 소통 플랫폼을 통해 당선인에게 바라는 제안을 2만건 정도 받았는데 인수위에 전달토록 하겠다”면서 “이런 식의 소통 플랫폼을 굳이 정부랑 민간이 별도로 만들 필요 없이 일원화하면 훨씬 진취적이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형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 안보 측면에서는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민관 협력 강화를 제안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바이오 산업이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좀 더 과감하고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미래 인프라 구축에 노력하되, 혁신전략 범정부회의체에 민간이 참여하게 해주면 정례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핵심 원천 기술을 좀 더 마련해야 미래 경제 안보가 튼튼해진다. 여기에 맞춘 전략 사업 구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경식 "노동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중재법도 손 봐야"
손경식 경총 회장은 윤 당선인에게 규제 완화와 노동 개혁을 요청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사항도 전달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 규제가 너무 많아 기업 활동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 생산을 확대하도록 하기 위한 진입장벽을 허무는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대한 걱정이 많다. 갈등적 노사관계가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현장 공권력 집행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 개혁에 대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면서 “노동개혁이 이뤄져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고 해외 투자가 들어오며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새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 개혁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했다. 손 회장은 “최근 산업 안전 필요성이 강조되며 기업들이 재해 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처벌 중심의 규제로 기업인들의 걱정이 많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대신 중대재해 예방 활동을 대폭 강화해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창수 "과잉 규제 개선해 기업인 창의‧혁신 DNA 살려야"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기업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과 규제 개선을 윤 당선인에게 주문했다.
그는 “성장동력 악화, 4차산업혁명 대응,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 고유가, 공급망 위기 등을 이겨내고 성장과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활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핵심 역량인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휘되기 위한 밑바탕은 경제적 자유와 기업인의 창의‧혁신 DNA”라며 “과잉 규제를 개선해야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대등 경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노사간 힘의 균형을 정상화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건의했다.
구자열 무협 회장은 무역 분야의 극복 과제로 수출입 물류난 개선과 한미 통상협력 강화를 제시했다.
그는 “수출입업계는 코로나19로 침체됐던 물류 수요가 급속 반등하며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수출입 물류 부문을 긴급재난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고 선박, 항공 등 국가 물류 인프라도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구 회장은 또 “미국의 통상협력이 더욱 긴밀해져야 한다”면서 “최근 무역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고, 미국은 우리 기업들의 전략 투자처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정부와 산업계가 더욱 긴밀히 협력해 산업과 연결된 대미 통상 협력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문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협동조합 통한 공동판매 허용' 등 요청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대-중소기업 양극화를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그는 “국내 대기업 대 중소기업 매출 수준이 52 대 48로 반반 정도 되는데, 전체 기업의 0.3%에 불과한 대기업이 수익의 57%를 가져가고 99% 이상의 중소기업들이 수익의 25%밖에 가져가지 못하는 기형적 구조”라며 “저성장 속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에 시달리는 부분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을 잘 하자고 해놓고 실제로는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삼성의 경우 원자재가의 급격한 상승을 납품 단가에 반영해주고 협조해주는 마인드라면, 원자재 값이 올라도 안 올려주는 기업들이 많아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사례를 설명했다.
김 회장은 그밖에 중소기업이 99%를 점유하는 뿌리산업 육성 정책을 중소벤처기업부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고 있고 연구개발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하게 돼 있는 정부 조직 구성의 불합리성, 협동조합을 통한 공동판매를 담합으로 규정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잉 처벌 등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중견기업들이 전통 제조업 기업으로서의 성장 한계를 느끼고 있고, 그런 기업들에게 새 인력과 기술,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벤처기업, 젊은 기업인들과의 창업 호흡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부분에서 중견련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재계와 소통 의지 긍정적…'민간 주도 경제성장' 마인드에 기대
이날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공언했던 ‘민간 주도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체에 대한 믿음’을 언급하면서 정부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과 투자를 방해하는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새로 출범할 윤석열 정부가 규제 개혁 측면에서는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 외에 모두 금지하는 방식인 반면,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하는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규제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반면, 노동개혁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입법 등에서는 한계를 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에 처해져 입법 분야에서 야당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개혁은 노동계의 표심도 감안해야 하는 사안이라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다만 당선인 때부터 경제단체들과의 자리를 마련하며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앞으로 재계의 입장을 무시한 일방적인 반기업 규제는 없을 것이라는 희망도 감지된다.
한편, 원탁에서 진행된 이날 오찬에서 윤 당선인 왼편으로 손경식 경총 회장이, 오른편으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자리했다. 최 회장 옆으로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이, 손 회장 옆으로는 최진식 중견련 회장과 구자열 무협 회장이 앉았다.
경제단체들은 오찬 일정 전부터 자리 배치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경제단체의 위상과 수장의 연배 등을 감안해 손 회장과 최 회장의 자리를 좌우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