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MBTI 전성시대②] “나는 E니까 외향적인 사람이어야 해”…획일화‧상업화, 과하면 독 될라


입력 2022.03.01 10:30 수정 2022.02.28 14:38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김소울 대표 "정도를 넘은 라벨링, 독 될 수 있다"

“2020년대는 실로 MBTI의 시간이었다. 202*년, 한국 고용노동부에서 MBTI를 통한 청년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중략) 몇 달 지나지 않아 여러 대기업에서는 자기소개서를 통해 모호하게 성격적 강점 따위를 묻는 대신 MBTI 검사 결과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몇몇 발 빠른 스피치 학원은 단 4주 안에 MBTI를 ENTJ로 바꿔준다는 광고를 내걸어 돈방석 위에 올랐다(ENTJ 유형이 월 소득이 제일 높고 INFP 유형이 월 소득이 가장 낮았다는 통계가 돌았기 때문이다)”


웹진 비유에 기고한 심너울 작가의 단편 소설 ‘MBTI는 어떻게 과학이 되었는가’의 일부다. MBTI를 즐기다 못해 맹목적으로 신뢰하게 된 한국 사람들의 미래를 상상해 쓴 글이다.


ⓒ인스타그램 MBTI 추천 검색 게시물

2022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MBTI는 MZ 세대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내용이 됐고, 연예인은 물론 기업들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종의 성격 분석에 불과한 MBTI를 향한 지나친 맹신이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든다. 특히 ‘절대적’일 수 없는 MBTI에 자신을 맞춰 규정화시키는 이들도 있다.


김영신 씨(32, 가명)는 “무리를 대표해 나서야 할 순간이 있었는데 ‘내가 E 유형이라 나서야 하나?’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나서고 싶지 않았는데 문제를 해결하기 좋아한다는 ESTP 유형이기 때문에 대표가 된 적이 있었다. 친구가 질문을 던져도 나는 T 사고형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 적도 있었다”라며 자신에게 맞는 MBTI 유형을 부여받은 것이 아닌, 자신이 MBTI에 맞는 옷을 입고 있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이 때문에 MBTI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걸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아는 팬들이 MBTI를 묻는 질문에 “나를 제한하는 것 같아서 싫다. 내 MBTI가 공개되면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알려지는 건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걸로 나를 국한시키는 것이 싫다. 그래서 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김소울 대표는 “같은 외양형의 사람이라도 내향성과 외향성의 비율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이런 성향이 강하다’ ‘이런 성향이 편하다’ 정도를 넘어서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와 타인을 레벨링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도 모두가 같은 사람일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경우, MBTI의 유형에 따라 스스로를 규정지으면, 그에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스스로를 탐색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닌 그 유형의 사람에 맞춰서 살아가게 만들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MBTI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인터파크투어가 MBTI에 따른 여행 스타일을 알려주고, 배달의민족도 배민 주문 유형 검사 MBTI 이벤트를 개최했다. 마켓 컬리도 MBTI와 비슷한 심리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외에도 ‘INFP가 읽어야 할 책’ 등의 클릭을 유발하는 이벤트가 남발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재미와 수익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추진하지만, 오히려 과도한 MBTI 마케팅은 피로감만 높이며 신뢰감만 떨어뜨린다. 특히 일정한 기준 없이 MBTI를 따라하는 마케팅은 오히려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한 뷰티 브랜드 마케팅 관계자는 “재미로만 사용될 때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지만, 고민 없는 콘텐츠 마케팅으로 쓰일 땐 반감도 있었다. 그 점을 인식하고 있다. 너도나도 MBTI 마케팅을 하고 있어 회사에서 자제하거나, 이를 변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라며 “MBTI 마케팅을 할 때 사람을 단정 짓는 표현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