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 불량 재료 손질하는 모습 공개돼
식품업계, 막연한 선입견 생길까 우려돼
소비자, 국내산도 못 믿어…먹거리 공포로 직결
정부 차원의 관리 감독 소홀 비판 잇따라
최근 국내산 김치 위생 논란이 번지면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일고 있다. 반찬과 찌개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음식에서 연이어 논란을 빚자 이제는 “사먹는 게 무서울 지경”이라는 반응이다. 정부 차원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지난 22일 MBC 보도에 따르면 김치 제조업체인 한성식품의 자회사 효원이 운영하는 김치공장에서 쉰내가 나고 속이 검게 썩어 변질된 배추와 무 등 불량 식재료로 김치를 제조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식약처가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논란이 된 회사는 충북 진천에 위치해 있으며, 김치 제조가 주력사업이다. 그간 간판에 해썹 인증 마크를 부착할 정도로 위생을 자신해왔다. 2020년 기준 514억원의 매출을 기록, 홈쇼핑과 리조트 등에 납품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MBC가 공개한 공익제보자의 공장 내부 촬영 영상에는 작업자들이 거뭇거뭇하게 변색된 배춧잎을 계속해서 떼어내고, 속이 갈변되거나 곰팡이가 펴 보라색 반점이 나타난 무를 손질하는 모습이 담겼다. 식재료뿐 아니라 공장 내 비위생적인 환경도 끔찍했다.
영상은 공익제보자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여러 번에 걸쳐 촬영했다. 영상에서 작업자들은 이같은 불량 식재료를 다듬으면서 “쉰내가 난다”거나 “아이고 더러워”, “쓰레기만 나온다”, “나는 안 먹는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한성식품은 즉각 사과하고 문제의 공장을 폐쇄했다. 23일 김순자 대표이사는 사과문을 내고 “자회사 ‘효원’의 김치 제조 위생 문제와 관련해 소비자 여러분께 깊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 소비자 불안으로 변질…식품업계, 피해볼까 "예의주시"
식품업계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업계 전반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식품업 특성상 한 업체에서 위생 이슈가 터지면 그 공포로 인해 해당 음식 자체를 꺼리는 현상이 한동안 지속돼 우려가 크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소비자 ‘먹거리 불안’은 공포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미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는 ‘김치 주의보’도 내려졌다. 이미 유명 맘카페 등에서는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김치를 사먹는 것 보다는 해 먹는게 안전하겠다”는 의견에 공감대가 모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임산부라고 밝힌 소비자는 한 포털사이트 댓글을 통해 “명인김치라고 광고하면서 배는 비싸게 팔았을 텐데, 이런 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니 어이가 없다”며 “먹는 걸로 장난치면 천벌 받는데 이참에 크게 벌 받고 사업 접으면 좋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특히 김치 같은 경우에는 수출 비중이 높은 데다, K-식품의 대표 품목으로 알려져 김치에 대한 국제적인 망신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높인다. 한성기업의 경우 중국을 비롯해 30여개국에 전체 판매량의 70% 수출할 만큼 해외가 주력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중국산 김치 파동’과도 다를게 없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중국에서 배추를 대량으로 절이는 방법’ 이라는 영상이 공개된 바 있는데, 당시 해당 영상에는 알몸의 남성이 구덩이에서 배추를 절이는 비위생적인 모습을 담아 충격을 안겼다.
당시 상황은 심각했다. 한국과 중국간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국내 기업 역시 피해를 비켜가긴 어려웠다. 김치 사건만 하더라도 관련 김치가 한국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매운동의 화력은 곧바로 국내 외식업계로 옮겨 붙기도 했다.
이번 역시 기업 차원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 더욱 문제인 상황이다. 한성식품 김치를 판매한 곳은 롯데홈쇼핑, NS홈쇼핑, 공영홈쇼핑 등 3곳이다. 이들 업체는 지난 22일 이후 편성된 방송을 일괄 취소하거나 티커머스, 온라인 등을 통한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나섰다.
다만, 세 업체 모두 현재 문제가 된 효원 진천 공장에서 제조한 김치는 팔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홈쇼핑업체들이 납품받은 김치는 한성식품의 부천, 서산, 정선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고 홈쇼핑 업계 관계자들과 한성식품 측은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논란이 터진 뒤 사먹는 김치 전반에 막연한 선입견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며 “일부 업체의 문제이긴 하나 파장이 없지 않은 만큼, 각 기업들이 위생 문제 더 꼼꼼히 점검하고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정부 관리감독 소홑 탓…"지난해 이어 3개월 만에 또 재발"
정부를 향한 소비자들의 비판도 거세다. 지난해부터 식품 위생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다 이들이 보통 복잡한 해썹인증을 거친 업체들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관리 감독이 소홀하다는 것이다.
해썹인증은 소비자가 식품을 안전하게 먹기 위해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과학적인 위생관리체계를 말한다. 원재료 생산, 제조, 유통까지 식품의 모든 과정이 관리된다. 원료와 생산공정에서 위해가능성 요소를 찾아 이를 제거하고 예방한다. 김치는 2008년 적용됐다.
정부가 해썹을 적용한 취지는 간단하다.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이 가장 눈 여겨보고 안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해썹 인증을 받은 식품업체를 중심으로 연이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해썹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도 이른바 ‘순대’ 사건으로 발칵 뒤집힌 바 있다. 해당 업체는 해썹인증을 받은 기업이었지만, 위생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관련 기업은 물론 이를 유통 취급하는 채널까지 전방위적인 피해로 빠르게 확산됐다.
직장인 김모(30대)씨는 “해썹 인증을 받는 과정과 절차 모두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들어 부쩍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 같다”며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과 업체들의 도덕성 해이에 따른 불안을 소비자가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대응에 나섰다. 식약처는 현장조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해당 공장의 위생 상태와 원자재 관리에 대한 문제점을 확인할 계획이다. 여기에 정부는 김순자 대표에 대한 ‘김치 명인’ 지정 철회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해당업체를 불시점검 했고 그 결과 제조시설, 환기구, 도마 등에서 위생관리가 미흡해 지자체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자꾸 반복해서 이런 일이 터지는 이유와 향후 시스템 개선에 대해서는 내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