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보험 해지' 공식 깨져
건강관리 경각심 확대로 수혜
국내 생명보험업계의 계약 해지 규모가 10여년 만에 감소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불경기엔 보험부터 깬다는 공식이 재현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됐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모양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으로 인해 건강관리를 둘러싼 경각심이 커지면서 보험업계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9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23개 생보사가 지난해 들어 11월까지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총 24조4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액수로 따지면 8160억원 감소했다. 해지환급금은 약정 만기가 도래하기 전 계약을 깨는 가입자에게 보험사가 내주는 돈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주요 대형 생보사의 추이를 보면 우선 삼성생명의 해지환급금 지급액이 5조4903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4% 줄었다. 한화생명의 해당 금액 역시 3조1015억원으로 6.1% 감소했다. 빅3 생보사 중에서는 교보생명이 내준 해지환급금만 2조8305억원으로 6.2% 증가했다.
이로써 지난해 생보업계의 해지환급금 규모는 12년 만에 감소 전환이 확실시된다. 연말 결산 시점 변경으로 9개월치 실적만 반영된 2013회계연도를 제외하면, 생보업계의 연간 해지환급금이 전년 대비 축소를 기록한 건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가 마지막이다.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내지 않아 계약의 효과를 잃게 된 고객에게 생보업계가 내준 효력상실환급금 역시 지난해 1~11월 1조227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7%(2455억원)나 줄었다. 소비자가 보험 계약을 잘 지키려는 경향이 그 만큼 강해졌다는 의미다.
◆경제 타격에도 계약 이탈 축소 눈길
코로나19로 인해 가계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했음에도 이처럼 계약 이탈이 축소됐다는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경기 침체는 곧 보험 해지 확대로 이어진다는 게 보험업계에서는 불문율과 같은 공식으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비싼 종신보험을 상품을 판매하는 생보사로서는 이 같은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만 해도 보험을 해약하는 가입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염려에 생보업계가 노심초사했던 이유다.
코로나19 충격 속에서도 보험 해지가 줄어들면서 생보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그 배경에는 전염병이란 특수 상황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개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면서, 질병이나 상해에 따른 비용을 보장하는 보험을 지키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최근 무·저해지 보험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도 가입자 이탈에 제동을 건 요인으로 꼽힌다. 무·저해지 보험은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는 보장성 보험 고객에게 해지환급금을 적게 지급하거나 아예 주지 않지만, 만기까지 약정을 유지하면 더 많은 환급금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예기치 못한 질병에 대한 경각심이 퍼지고 있고, 만기까지 계약을 유지해야 소비자 입장에서 유리한 상품 판매가 늘어난 상황 등이 생보사 고객의 중도 이탈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