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불안감 가중 우려·국제사회 규탄 의식 해석
'도발' 규정 안 해…남북 대화 재개 염두에 둔 듯
文 '대선' 거론, '북풍' 우려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청와대와 정부가 11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추정 단거리 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직전보다 수위를 높인 입장을 냈다. 지난 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에는 '우려' 수준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강한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만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듯 이번에도 '도발'이라는 단어는 제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조치 강구를 지시했다.
이날 청와대에 따르면 청와대와 정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협의했다. 북한이 오전 7시 27분경 내륙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1발을 쏜지 1시간 20여분 만이다.
NSC 상임위원들은 원인철 합동참모의장으로부터 관련 상황과 군(軍) 대비태세를 보고 받고, 북한이 연초부터 연속적으로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의도를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번 발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지난 5일 북한이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을 때와 비교해 수위가 올라간 것이다. 당시 NSC 상임위원들은 "국내외적으로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루어진 이번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고 했다. 연이은 북한의 도발로 국민적 안보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문 대통령도 이날 NSC 상임위 결과를 보고받고 "대선을 앞둔 시기에 북한이 연속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데 대해 우려가 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에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같은 입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과 일본, 알바니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 등 6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공개토의를 앞두고 낸 규탄 성명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목표로 언급한 성명을 내놨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 대신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CVID' 용어를 사용한 건 드문 일이다.
합참도 이날 "최근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또 이는 한반도는 물론 국제평화·안전에 중대한 위협이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군사적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 않았다. NSC가 '도발'로 규정한 건 지난해 9월 15일 상임위원회 긴급회의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도 한국 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을 참관한 뒤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부적절한 실언"이라고 비난하며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한 후부터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에서 '도발'이라는 표현은 사라졌다.
이를 두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수위 조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NSC 상임위원들은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대화 재개와 협력에 조속히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더 이상 남북관계가 긴장되지 않고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각 부처에서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정부의 '북한 눈치보기' 지적이 제기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러한 지적에 대해 "도발이라는 용어는 우리 국민과 영토, 영해, 영공에 위해를 가하는 것을 도발이라고 통합방위법에 규정돼 있다"며 "미사일 방향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반드시 도발로 성격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대선 등 국내 정치 일정을 언급하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우려를 표명한 건, '북풍'을 우려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안보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될 경우 여권에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대선을 엄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국정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더 이상 남북관계가 긴장되지 않고 또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각 부처가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라는 말씀"이라며 "정치적인 전환의 시기에는 남북관계가 긴장되지 않는 것이 항상 그렇지만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2002년 NPT 탈퇴 등 북한이 대선 국면에서 한반도 이슈에 개입하려는 모습들을 보여 왔는데 이번 발사도 같은 성격으로 판단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청와대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 특정한 판단에 기초해서 이뤄진 말씀은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