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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라고요?" 절규하는 간호사들 vs 의사들 "간호사 단독진료 위험"


입력 2022.01.05 10:13 수정 2022.01.06 14:57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간호협회 '간호법 제정' 촉구 수요집회·1인 릴레이 시위 한달째

간호계 "처우·복지·인력 개선 절실…낡은 현행 의료법, 간호사 보호 못해"

의협 "의료계 전반 처우 개선 논의 필요…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 우려"

국회 보건복지위, 양쪽 눈치만 보며 "복지부가 의견 취합하며 쟁점 조율 중"

간협과 전국 간호대학 대표들이 4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비상대책본부 발족을 선포하고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데일리안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는 법 제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확산세로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간호사들을 보호할 최소한 법적 테두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간호사 단독법 제정은 직역 이기주의"라고 일축하고 "간호사들의 독자, 단독 진료 행위로 이어져 보건의료의 뿌리를 흔들고 보건의료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대한간호협회와 전국간호대학생비상대책본부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상대책본부 발족을 선포하고 간호 현실을 개선하는 간호법 제정을 거듭 촉구했다. 앞서 간협과 전국 간호학과 대학생들은 지난달 8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등에서 수요 집회, 1인 릴레이 시위 등을 벌이며 간호법 통과를 요구해오고 있다.


간호계는 코로나19 장기화와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으로 간호사 업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력 수급, 처우 개선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테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OECD 국가와 개발도상국에도 간호사들을 보호하는 간호법이 있는 만큼 대한민국에서도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박준용 전국간호대학생비상대책본부장은 이날 "간호사들이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간호사들의 미래는 낡은 의료법 안에 묶여 있다"며 "간호대 학생들이 제대로 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민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간호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민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현장에서 만난 간호학과 3학년 손수진(38)씨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료보다는 돌봄의 영역이 점점 커지고 간호사 업무 범위도 늘어나고 있다"며 "이미 해외에서는 독자적 간호법을 바탕으로 간호사가 많은 독립적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 간호사들은 업무 영역이 명시돼있지 않아 합법, 불법 경계가 모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 간호대학 학생들 조차도 처우 때문에 수도권 병원으로 몰리면서 의료 공백이 생기고 있는데 처우 개선 논의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해대학교 간호학과 4학년 김남혁(27)씨도 "현장 실습을 나가면 간호사 선배들이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일 하고, 초과 근무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지켜주는 법도, 제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특히 코로나19 확산세가 2년이 넘었는데도 복지 수준은 낮고 업무 강도는 살인적인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선배들과 신입 간호사들이 현장을 못 버틸 것"이라고 걱정했다.


8년 차 간호사 이모(33)씨는 "현재 의료법은 요양원, 요양시설, 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데, 간호법이라는 큰 틀에서 보호가 필요하다"며 "코로나19로 업무가 가중되면서 간호사들의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 최소한 인력 기준표를 만들어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씨는 이어 "업무 범위도 '의사 지도 아래'라는 모호한 기준 아래 있다 보니 채혈, 수술 동의서 받기, 콧줄 세척 등 업무 경계가 애매해 현장에서 어려움이 많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처우 개선보다 간호사들의 '진료 처방' '단독 개원'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쉽다"고 토로했다.


지난 11월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국회심의 반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의사들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해 각 지역 의사회들은 간호법 제정이 '직역 이기주의'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이날 "보건의료인력의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의료계는 다양한 직역이 어우려져 의료 행위가 이뤄지기 때문에 특정 직역만 따로 분리해 법안을 제정하기 보다 전체 의료업계 전반의 처우 및 환경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한 발의된 간호법은 간호사의 독자적 진료 행위를 허용하게 해 환자들이 안정적이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하에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최근 발의 된 간호 법안은 '진료의 보조'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했다.


이 관계자는 "나쁜 병원장, 사업주들은 의사 인력을 적게 고용하고 간호 인력을 통해 박리다매식 의료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다"며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많이 봤다고 해도 환자 몸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응급 상황에서는 의사들의 세밀한 지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OECD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만 간호법이 없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간호사 단독법을 보유한 국가는 11개(오스트리아, 캐나다, 콜롬비아,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일본, 리투라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터키)로 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역 의사회들도 잇따라 반대 의견을 냈다. 울산시의사회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간호단독법안이 통과될 경우 보건의료의 뿌리를 뒤흔들고 보건의료체계의 혼란을 초래하며 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광주시의사회와 대구시의사회도 '모든 보건의료인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간호법 제정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등이 지난 3월 발의한 간호법은 법안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간호법은 ▲5년마다 간호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복지부가 3년마다 실태 조사 ▲국가와 지자체가 간호 인력 수급 및 근무환경 개선 정책수립·지원 ▲복지부 장관이 간호사의 근로 조건과 임금 관련 기본지침 제정 및 재원확보 방안 마련 ▲간호사가 업무로 인해 인권 침해를 받지 않도록 조사와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달 24일 열린 법안 소위에서 대한의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등 반발에 부담을 느껴 추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직역 간 갈등이 심해 보건복지부가 의견을 취합하고 쟁점 조율을 하고 있다"며 "의견 조율이 된 후 다시 소위에서 논의하자고 합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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