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황 등 약용작물 기능성에 주목
현대인에 맞춘 화장품・건강식품 탁월
한의사 출신 연구관 노력 눈길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전통적인 약용작물들이 다양한 산업군에 뛰어들고 있다. 음료, 화장품, 건강식품 등 식재료 시장에서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산수유와 오미자 등은 일상에서 약용작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음료와 차로 인기 상품 반열에 오른지 오래다.
그러나 약용작물의 기능성을 구명하는 것을 의외로 쉽지 않다. 아무래도 약용에 쓰이다보니 과다 복용시 부작용이나 재료간 궁합도 필요하다. 또 고대 문헌에서 내려오는 처방전의 현대적 해석도 필요한 대목이다.
최수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보건연구관은 “특용작물에서 기능성 소재 발굴을 위해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고 있다”며 “동의보감 등 전통의서에서 경험적으로 쌓아왔던 기록들을 참고해서 좋은 것을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옥고’에서 탈출…수백년 베일 벗어던진 ‘지황’의 매력
약용작물의 전통적인 효능은 이미 수백년 고찰에서 입증된 내용이다. 그럼에도 약용 이외의 기능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입증된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농진청에서 연구하는 약용특작물은 이런 기능성에 초점을 맞춰 시작됐다. 현재 기능성을 구명하는 약용작물은 ▲지황 ▲산수유와 오미자 ▲참당귀와 단삼, 영지버섯 등이다.
지황은 국내 주요 약용작물 중 하나다. 지속적으로 생산량이 증가하는 작물이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경옥고’의 주재료가 지황이다. 그러나 이런 약재료 말고 쓰임새가 한정적이다. 용도개발이 절실해진 이유다. 특히 잘못 섭취하게되면 소화장애나 설사, 쓴맛 등 부작용도 상당하다.
최 연구관은 “생지황을 먹으면 소화장애를 유발하는 특용작물이다. 이런 생지황으로 용도 다양화를 추진 중”이라며 “농진청에서 지황 신품종을 개발한 것이 있다. 그 품종을 활용하면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의학에서는 생리기능 부조화에서 비롯된 신체 허약상태를 북돋는 약물을 보약이라고 한다. 지황은 조선 왕실 보약인 경옥고를 비롯해 각종 보약 처방에 빠지지 않는 작물이다. ‘신농본초경’에서는 지황을 ‘지수(地髓)’ ‘땅의 정수’로 기재하고 있는다. 이는 지황이 땅의 기운을 오롯이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황은 가공 방법에 따라 이름과 효능이 달라진다. 생것은 생지황(生地黃), 생것을 말린 것은 건지황(乾地黃), 술 등을 넣고 쪄서 말린 것은 숙지황(熟地黃)이다.
생지황과 건지황은 두 가지 모두 성질은 차고 맛은 달지만 생지황이 건지황보다 약간 더 쓰다. 심장, 간, 신장 기능이 떨어져 발생하는 증상을 치료하며 체내 열을 내려주면서 체액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지황에는 카탈폴, 스타키오스 등의 성분이 함유돼 있다. 특히 카탈폴은이뇨, 혈당 강하(낮춤)등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생지황은 활자와 영상을 많이 보는 현대인의 눈 건강에 도움을 준다.한방의약서 동의보감에는 ‘자고 일어나면 눈에 핏발이 서고 붓는 등의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열을 내려주는 식이요법으로 지황죽을 소개하고있다.
숙지황은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맛이 달다. 간, 신장 기능이 저하돼 생기는 증상을 치료하며 혈액을 포함한 체액을 보태주므로 보약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숙지황 성분은 생지황, 건지황과 비슷하지만 찌고 말리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스타키오스와 카탈폴 함량은 줄고 단당류(5-HMF) 등이 생성된다. 생지황, 건지황보다 말초순환장애 개선과 골 형성 촉진 작용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연구관은 “지황은 성질 자체가 차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몸이 뜨거운 경향 있는 현대인들에게 잘 맞는다”며 “열을 내려주는 약재라서 우리몸에 부족한 채액 보충이나 보약에 많이 쓰인다”고 전했다.
◆여름철 최고 약용작물로 떠오른 ‘산수유와 오미자’
여름철 최고 건강식품으로 떠오른 약용작물은 단연 산수유와 오미자다. 음료시장에서는 이를 첨가한 다양한 음료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산수유와 오미자는 열매를 약으로 쓰는 작물이다. 몸 안의 기운과 땀이 몸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아주며 사과산, 주석산, 비타민이 풍부해 피로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산수유는 간과 신장 기능에 좋은 작용을 한다. 또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며 소변이 잦거나 귀가 잘 안 들리는 증상을 호전시키는 효능도 있다. 산수유 고유의 맛을 내는 성분 중 하나인 ‘코르닌’은 부교감 신경을 흥분시켜 맥박과 혈압을 낮추고 소화를 촉진해 몸을 편안하게 한다.
산수유는 주로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술이나 차로 만들기도 하지만 여름철에는 가루로 내 요거트에 타서 먹거나 샐러드에 곁들이면 좋다.
오미자는 폐와 심장, 신장 기능 부족으로 발생하는 증상들을 치료한다. 기침이 나고 입이 마를 때, 마음이 안정되지 않거나 소변이 샐 때 이용하면 도움이 된다. 오미자 주요 성분인 쉬잔드린, 고미신 등은 주의력을 높이고 운동 능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오미자는 높은 온도로 오래 끓일수록 쓴맛이 강해지므로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우려내는 것이 좋다. 오미자 우린 물을 얼려 만든 셔벗은 붉은 빛이 감돌아 시각적인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이색 간식이다.
하지만 이런 인기 작물도 고민은 있다. 수확과 이용시기가 불명확해 소비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이 어렵다. 오미자 소비는 최근 3년간 감소하는 추세다. 농가에서도 수확과 이용시기에 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최 연구관은 “농진청은 산수유와 오미자가 기호성, 기능적인 측면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점에 착안에 장기적인 기능성 소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특히 수확 시기에 따라 기능적 차이를 구명하는 부분이 진행 중이다. 농가에서 경험적으로 열매 수확하는 것보다 면역기능이나 가공하는데 좋은 시기를 선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의사 출신 최수지 연구관 손 끝에서 시작되는 현대판 ‘동의보감’
최수지 연구관은 한의사 출신이다. 3년 전 농촌진흥청 특별채용으로 입사해 약용특작물 기능성 연구에 뛰어들었다. 한의사 출신답게 농진청에 등재된 약용작물이 처방 이외의 재료에 사용될 경우 모두 그의 손을 거쳐야 한다.
최 연구관의 철학은 분명하다. 한의학 내에서 사용되는 약재들의 약용 효과 이외의 것들을 직접 구명해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현대인의 체질이 과거보다 많이 변했다는 부분을 주목하고 이에 걸맞는 처방과 조합에 대한 연구에 한창이다.
최 연구관은 “약용작물의 기능성 구명은 민간연구소나 대학 등에서도 한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 특용 작물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농진청을 선택한 것은 우리 농업과 산업계에 파급력이 큰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가 연구하는 지황, 산수유, 오미자, 영지 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으로 동의보감 등 한의학 고문헌의 처방에 대한 상호작용과 시너지 효과 등을 구명하는 것이 그의 큰 그림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처방의 경우는 한의사가 의료기관에서 체질에 따라 하지만, 건강기능성 소재로 현대화시키는 것은 농진청에서 해야 할 일”이라며 “농진청은 특용작물 재배 농가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약용작물을 약으로 보는 것과 동시에 식품으로 활용을 극대화 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최 연구관은 각종 고문헌에 나오는 처방전과 약용작물의 데이터를 꼼꼼히 수집하고 있다. 여기에서 현대인의 식습관이나 체질 등 변화에 맞춘 새로운 처방전과 기능성에 대한 구명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최 연구관은 “실제로 고문헌의 처방전 일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안나는 것 많다. 계피가 대표적이다. 더운 지역에서 난다”며 “우리나라에서 잘 키울 수 있고 중국산보다 우리 작물만 가진 특이한 성분을 찾아야 한다. 기능성 등을 찾아서 수입 특용작물 대체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고문헌 현대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토대로 더 좋은 기능성을 찾는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12월 30일 [新농사직썰㉒]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