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를 뚫고 21일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극장 영업시간 제한 즉시 해제’를 요구했다. 지난주 토요일(18일)부터 시행된, ‘오후 10시까지 영업’의 조치를 거둬달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그들은 왜 거리로 나섰고, 영업시간 제한 해제를 강력히 요청했을까. 한두 명이 모인 것도 아니고 한국상영관협회를 비롯한 각 극장사,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수입배급사협회 등 영화단체 소속 영화인들이 주최한 ‘영화업계 정부지원 호소 결의대회’에는 위탁극장을 운영하는 극장주와 영화관 상권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지역 소상공인들도 참석했다.
먼저, ‘오후 10시까지 영업’을 현실적으로 따져 보자. 오후 10시까지 상영과 제반 업무를 마치자면 오후 7시대에 영화가 시작돼야 하는데, 일을 마치고 그 시간까지 극장에 도착할 수 있는 직장인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를 고려하면 막막한 상황인 게 사실. 실질적으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가 시행된 후 유의미하게 관객이 늘고 있었고, 이에 맞춰 대작 영화들이 개봉 일정을 알린 상황에서 취해진 영업시간 제한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희망의 문’을 도로 닫는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위드 코로나’ 기대 속에 언론배급시사회를 마치고 배우 인터뷰 일정까지 확정했던 설경구 이선균 조우진 주연의 ‘킹 메이커’가 개봉을 연기했고, 송강호 전도연 이병헌 주연의 블록버스터 ‘비상선언’도 개봉을 미뤘다. 오후 7시대가 마지막 상영인 상황에서 개봉을 강행할 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대작 한국영화의 개봉이 미뤄져서 해당 작품에 투자하고 제작한 사람들이 수익을 ‘당장’ 거둬들이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찾아주는 관객이 있으니 극장 문을 닫을 수는 없고, 많은 관객이 찾아줄 만한 영화들은 개봉을 미루는 상황에서 내걸 작품이 없는 문제만도 아니다.
나중에라도 개봉하면 되지, 극장은 보통 대기업에서 운영하니 버틸 수 있을 거야, 라고 일갈하기엔 피해 상황이 심상치 않고 모든 극장주가 ‘부잣집 아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다. 중소기업으로도 분류되지 못하는 군소 극장주들도 우리 곁에서 영화들을 개봉하고 있다. 극장에는 또 극장 주변 상권에는 관객이 몰려 영화가 흥행해야, 재미있는 영화 보고 기분 좋아 외식해야 먹고사는 자영업자들도 많다. ‘극장’과 ‘영화 개봉’을 중심으로, 영화의 기획과 제작부터 상영과 먹거리까지 하나의 ‘영화 생태계’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피해 규모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2억 2,600만명에 달했던 국내 관람객은 지난해 5,9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된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시장 극장 매출액은 2019년 대비 73.3%가 감소한 5,104억 원을 기록했다. 관객 수로 보든 매출액으로 보든 ‘4분의 3’이 사라진 것이다.
어제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앞에 ‘생존권 보장’ 머리띠를 두르고 참석한 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에게 정부지원 촉구 결의대회가 촉발된 배경에 관해 물었다.
장원석 대표는 22일 데일리안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상영관협회, 프로듀서협회, 감독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만큼 ‘인내의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할 만큼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더 영세한 업장의 분들이 목소리를 내고 계셨고, 최대한 참아 보자는 분위기가 있어 다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를 감당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고 답했다.
또, 영업시간 제한 즉시 해제와 피해 규모 산정 및 보상 등의 요청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영업시간 제한 해제”라고 강조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영업만 정상화된다면 영화 제작부터 극장 상권 자영업자분들의 매출까지 회복의 희망이 생긴다. 정부 방침을 따를 테니 손실만 보상해 달라는 게 아니다. 극장은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고, 영화를 보시는 관객분들을 위한 문화적 공간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지속되더라도, 아니 코로나19로 마음이 어두워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머니로도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 공간이 중요하다.”
장원석 대표는 정부 방침에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현실적 타당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방역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어제 이런 의견을 내신 분도 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스크 쓰고 휴대전화로 영화 보는 건 괜찮고, 방역 지침 준수하며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위생과 안전 관리에 힘쓰고 있는 극장에서 거리 두고 앉아 마스크 쓰고 영화 보는 것은 안 되느냐는 것이다. 극장은 방역의 사각지대가 아니다.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같은 시간 제한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거리로 나선 영화인들은 적어도 두 가지는 알렸다. 하나는 매출이 4분의 1로 줄 만큼 경제적 피해가 심각함에도 참고 있었다는 것, 더 인내하다가는 사지로 내몰릴 상황이라 “살려 주세요” 소리를 질렀다는 것. 우리는 이제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게 우리들의 문화 공간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