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난에 따른 완성차 생산 감소로 부품업계 줄도산 우려
부품공급난→완성차 생산차질→부품업계 경영악화 '악순환'
강성노조 득세까지 더해지며 카플레이션 심화 전망
1년 넘게 지속돼 온 반도체 쇼티지 발(發)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차질이 부품업계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품업체들이 무너질 경우 부품 공급 부족이 또 다시 완성차 생산차질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 최근 완성차 노조에 강성 집행부가 잇달아 들어서며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 임금부담 등으로 완성차-부품업계 생태계를 뒤흔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자동차 부품사 3~4곳이 잇따라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들 중 현대자동차와 한국GM에 브레이크 부품(캘리퍼)을 공급하는 한 부품사는 법원으로부터 회생 불가 결정을 받아 기업 청산이 불가피해졌다.
현대차와 한국GM은 같은 부품을 복수의 협력사로부터 공급받는 멀티소싱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당장 부품사 한 곳의 폐업이 가동차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다.
부품사들이 폐업으로 내몰리는 배경은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완성차 생산차질이다. 물량을 소화해줄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량이 줄어드니 부품사들의 일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부품사들의 매출은 평균적으로 30%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자동사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완성차 업체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 수는 744개로 전년 대비 9.7% 감소했다. 지난해에만 80곳의 1차 협력 부품업체가 문을 닫은 것이다.
반도체 수급난이 본격화된 올해에도 추가로 수십 곳의 1차 협력사가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협력사와 거래하는 2, 3차 협력사들의 폐업은 그 몇 배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완성차와 부품업계는 하나의 생태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거래처가 한 곳으로 한정된 전속 협력사도 있지만 상당수의 1차 협력사는 두 곳 이상의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한다. 2, 3차 협력사 역시 복수의 상위 협력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업 한 곳의 폐업이 상‧하방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폐업하는 곳이 늘어날수록 연쇄 효과도 커져 산업 생태계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
완성차 업체의 생산차질이 협력사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협력사가 폐업하면 부품 공급 차질로 완성차 생산이 멈추는 악순환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완성차 생산차질의 원인이 된 반도체 수급난이 점차 완화되며 내년 하반기부터는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그때까지 부품사들이 버텨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특히 최근 현대차와 한국GM 노조에 강성 집행부가 잇달아 들어서며 완성차 업계 노조가 강성화 되는 추세도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 큰 위협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노조 파업으로 가동을 멈추고 부품 조달을 중단하면 가뜩이나 오랜 실적 부진으로 체력이 소진된 협력사들은 버텨낼 방법이 없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한다면 생태계 내의 기업들 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피해를 입는다. 계약 후 인도까지 대기시간이 길어질 뿐 아니라 가격 인상으로도 이어진다. 줄어든 생산‧판매로 인해 대당 반영되는 개발비용이나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차종의 경우 신차가 아닌 연식변경 모델임에도 불구, 가격을 올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2022년형 싼타페를 출시하며 트림과 사양을 일부 조정하는 대신 가격을 트림별로 100~200만원씩 올렸다.
통상 재고 조정 차원에서 진행하던 할인 프로모션도 점차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추세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자동차 가격 상승 현상 분석’ 보고서에서 “완성차기업은 판매량 감소, 친환경차 R&D 투자, 하방 경직적인 인건비 증가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가 불가피하며, 국내에서도 연식 변경과 함께 자동차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