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 계보 잇는 100% 국산
설 자리 잃은 일본쌀 소비자도 외면
2024년까지 1만ha 국산 대체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1971년에 개발된 ‘우리쌀’ 통일벼의 후손들이 제대로 일을 냈다. 개발 2년 만에 이천시 브랜드 쌀을 바꾸더니 이제 전국구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순수 토종쌀 품종이 해외로 수출될 날도 머지 않았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토종쌀 쌍두마차인 해들과 알찬미는 순수 국내기술과 더불어 우리 토양・기후에 적합한 ‘한국형 종자’다. 그동안 수많은 개량 품종이 있었지만 모두 일본쌀 등 해외 종자와 이종・삼종 교배해 탄생한 쌀(품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들과 알찬미의 성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기후로 국내 쌀 재배는 각종 질병에 취약해졌다. 전통적으로 국내에서 강세를 보이던 아끼바레와 고시히까리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인 셈이다.
해들과 알찬미는 기술력 뿐만 아니라 지역, 농가 등 협업으로 탄생한 품종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이미 시장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프리미엄 쌀’의 새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현웅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과 농업연구사는 “1970년대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외래벼를 브랜드 쌀로 사용하고 있다”며 “해들과 알찬미를 개발하면서 외래벼 및 브랜드 특화를 위한 기종 장기재배 품종 대체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정관념 깬 이천시의 변신…”토종쌀의 반격”
“쌀알이 맑고 낟알이 고르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니 좋습니다. 우리 지역 대표 벼 품종을 내 손으로 뽑았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요. 우리 지역에 ‘해들’ 종자가 하루빨리 공급되면 좋겠습니다.”
경기도 이천시 벼 농가들은 요즘 연일 함박 웃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불과 2년 전 만해도 이천쌀의 미래를 걱정하던 이들이 신바람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천시는 고유 쌀 브랜드인 ‘임금님표’를 통해 전국구로 성장했다. 하지만 기존 품종의 밥 맛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쌀의 인기는 예년만 못해졌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이천쌀은 9년 연속 쌀 부문 ‘슈퍼브랜드’에 선정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그만큼 농가와 미곡처리장(RPC, 옛 정미소)의 자부심은 상당했다.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던 것도 이 무렵이다. 9년 연속 슈퍼브랜드 선정은 극명한 그림자도 만들었다. 밥 맛을 표현하는 미질 평가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천시와 농가, RPC는 새 품종 개발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때마침 농진청에서도 새 품종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와 맞물렸다. 이렇게 해들과 알찬미의 탄생을 알리는 첫 단추가 채워졌다.
해들은 지난 2016년 농진청이 이천시, 농협과 함께 ‘수요자 참여형 품종 개발 연구(SPP)’로 이듬해인 2017년 개발한 조생종 최고품질 벼다. 육종가가 교배하고 농업인이 선발해 소비자 평가단이 결정했다. 지역민이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모두가 주인인 최초 새 품종이다.
2018년에는 신품종선정위원회에서 뛰어난 밥맛과 재배 안정성을 인정받아 최고품질 벼로 선정됐다. 특히 평가자의 48%가 해들 밥맛이 좋다고 꼽아 29%를 차지한 ‘고시히까리’보다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천시는 국내 대표 쌀 브랜드인 ‘임금님표 이천쌀’ 원료곡 차별화를 위한 품종 교체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이에 재배 안정성과 품질이 뛰어난 해들 재배 면적이 늘게 될 경우 품질 향상과 수량 증가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기대가 컸다.
이천시는 당초 계획보다 빠르게 해들로 교체를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1020ha에 달하는 이천시 전역의 고시히까리 쌀 품종을 모두 해들로 대체하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사용하던 고시히까리가 사실상 완전 퇴출을 알린 것이다.
현 연구사는 “이천시는 당초 올해까지 해들로 완전 대체할 계획을 수립했었다. 그 계획이 1년이나 앞당겨 마무리 된 것”이라며 “해들을 처음 보급했을 당시 고시히까리의 쓰러짐 현상, 잦은 병 발생 등으로 품질이 저하된 단점들이 보완되면서 농가와 RPC에서 적극적으로 대체에 동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품종인 ‘알찬미’ 역시 이천시에는 단비 같은 존재다. 지난 2018년 경기도 이천시, 농협 RPC와 함께 SPP로 육성한 고품질 벼로 밥맛이 뛰어나고 쓰러짐에 강하며 내병성을 갖춘 품종을 탄생시켰다.
쌀 겉모양(외관)이 깨끗하며 단백질 함량이 5.6%로 낮고 식미검정에서 밥맛이 매우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쌀 수량은 538kg/10아르(a)로 대비품종 ‘화성’보다 6% 많다.
품종 개발 후 연이은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으며 도열병, 흰잎마름병, 줄무늬잎마름병에도 강해 재배 농가 만족도가 높았다. 도정 특성도 우수해 도정업자 선호도도 최고 수준이다.
알찬미는 경기도 이천에서 오랜 기간 재배된 외래품종 ‘아끼바레(추청)’를 대체하기 위한 품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천시는 지난해 아끼바레 재배면적 15%를 알찬미로 대체했다. 올해는 46%로 확대했다.
알찬미는 올해까지 경기도 이천시 자체 채종포와 농업실용화재단 등 외부 위탁채종포에서 종자를 생산하고, 2023년 이후에는 국가보급종 체계를 통해 안정적으로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다.
현 연구사는 “국내 벼 품종 품질경쟁력 향상과 외래품종 대체를 위해 외래 벼 품종의 재배면적을 2024년까지 1만 ha 이내로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지역에적합한 최고품질 벼 품종 선발과 보급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해들과 알찬미가 이 계획의 선봉장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홈그라운드에서 강한 비결은…기술・협력・소통
이천시와 농가의 노력은 전국 농가에도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해들과 알찬미의 성공은 그동안 육종가들의 전유물이던 벼 품종의 고정관념을 확실하게 깬 협업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벼 품종은 300개가 넘는다. 농진청 뿐만 아니라 대학, 연구소 등 민간에서도 벼 품종 개발은 꾸준히 진행됐다. 이렇게 많은 품종 개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은 품종은 채 10개도 되지 않는다.
소위 상위 품종이 전국 벼 재배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가 30년간 이어진 셈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RPC와 농가의 현실적 문제와 육종가들의 자존심이 대립되며 지속돼 왔다.
이번 해들과 알찬미도 자칫 빛을 보지 못한 채 개발 품종에 그칠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새 품종을 개발한 현 연구사는 품종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시연을 통해 설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농가와 RPC에게 신뢰를 주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품질의 개선점을 파악하는 선순환이 정착되면서 해들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지자체도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임금님표 이천쌀’의 변신이 시작됐다.
현 연구사는 “해들과 알찬미는 협업을 통해 얻어낸 값진 성과다. 지금까지 새 품종은 출원에서 등록까지 2년, 국가보급종으로 되는데 3년으로 5년 이상 걸리게 된다”며 “참여형은 출원에서 바로 체종을 하고 있어 5년이 단축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들로 대체한 이천시는 쌀 품질에 대한 민원이 현저히 줄었다. 해들과 알찬미 판매가 소진 되고 추청쌀을 사용하면 민원이 증가하는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육종가와 농가, 지자체의 삼박자가 맞은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덧붙였다.
◆우리쌀, 10년 안에 최고 브랜드로 우뚝
우리쌀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은 것이 통일벼다. 통일벼는 한국전쟁 이후 자급자족 시발점이 된 역사적 변곡점이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었다. 당시 우리 벼 품종은 재래종과 도입종이 주류를 이루면서 키가 커서 잘 쓰러지고 각종 병해에 약해 평균 쌀 수량성이 310kg에 머물렀다.
이런 가운데 1971년 개발된 통일벼는 6년 후인 1977년 식량 자급자족을 이루며 농업에 새 지평을 열었다. 당시 농가 호당 평균소득(0.3ha 기준)은 1972년 2400원에서 1977년 1만2800원으로 껑충 뛰었다. 우리나라 쌀 생산량도 1965년 350만t에서 1977년 600만t으로 두 배 가량 상승했다.
통일벼를 시작으로 통일형 품종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70년대 중반까지 통일, 조생통일, 영남조생 등이 개발됐고 70년대 후반에는 태백벼, 추풍벼 등이 선보였다. 80년대에는 풍산벼 등이 개발돼 농업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이런 계보를 이은 해들과 알찬미는 맛, 생산량, 상품성 등을 모두 갖췄다. 1971년 통일벼 개발이래 30년 만에 ‘완전체’ 토종 품종의 탄생을 알렸다.
해들은 외래벼 품종 고시히까리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꽃이 일찍 피어서 추석 전 출하가 가능해 좋은 가격에 판매될 수 있다. 도열병, 흰잎마름병에 강한 복합내병성이다. 지난해와 올해는 이상기후로 도열병 피해가 유난히 많았다.
이천과 인접한 여주에서도 도열병 발생이 많아 농가들 피해가 컸다. 하지만 해들은 도열병 피해가 단 한건도 보고되지 않아 저항성 품종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쓰러짐과 수발아에 강해 재배안전성이 높다. 2019년 링링, 타파, 지난해 하이선, 마이삭 태풍에도 피해가 적었다.
또 밥맛이 중만생종 수준으로 매우 좋다. 보급 첫해인 2019년 양재동 하나로 클럽 첫 출시행사에서 1주내 최고가로 전량 판매 됐다. 결국 해들은 개발 2년 만에 임금님표 이천쌀 고시히까리 재배면적 1020ha를 100% 대체 했다.
해들 품종 명칭은 이천 지역민 공고를 통해 선정됐다. 해들은 ‘벼를 키우는 해, 벼가 자라고 여무는 들’ 이라는 뜻이다.
경기도는 오랜 기간 관행처럼 재배되고 있는 외래품종 교체 염원이 있었다. 알찬미는 2017~2018년 이천시 마장면에서 수행한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개발 프로그램 수행결과 대비품종인 ‘추청(아끼바레)’ 보다 재배안정성과 밥맛에서 농업인과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알찬미는 중생종으로 아끼바레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우리나라 재배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만생종 홍수출하 시점보다 수확이 빨라 쌀 수급이 용이하다. 도열병, 흰잎마름병, 줄무늬잎마름병에 강한 복합내병성이다.
키가 작아 지난 2년간 태풍에 의한 쓰러짐 피해가 단 한건도 보고되지 않은 품종이다. 또 소비자 밥맛 평가단 45%가 알찬미를 선택해 2%를 차지한 추청보다 밥맛이 뛰어나다. 이러한 우수성으로 홍콩에 수출까지 됐다. 내년에는 30여 년간 이천에서 재배된 아끼바레가 ‘알찬미’로 100% 대체될 예정이다.
알찬미 역시 품종 명칭은 이천 지역민 손에 결정됐다. 알찬미는 ‘가을 햇살에 알이 꽉차고 영양이 가득한 건강한 쌀’이라는 의미이다.
이천시 성공사례로 타 지자체 브랜드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아산, 김포・강화 등도 면적을 확대하는 추세다. 국내외 고품질 프리미엄 시장용 신품종으로 활용 가치도 높다. 해들의 경우 비싼 단가에도 조기 품절이 될 정도로 소비자 선호도가 정착됐다.
하나로클럼 양재점에서 올해 쌀 판매 가격을 보면 10kg 기준 해들은 4만4300원에 거래됐다. 고시히까리(4만1600원), 오대(4만1200원)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확실한 프리미엄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시적 경제 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임금님표 이천쌀은 해들로 완전 대체 이후 108억7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9월부터 거둔 성과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현 연구사는 “향후 해들과 알찬미 등 국내 품종은 일본도입 품종보다 우수한 자원으로 식량안보 및 권리확보 등 종자 주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참여형 품종개발로 외래품종이 완전 대체될 경우 우리 쌀 브랜드 경쟁력도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는 2024년까지 외래벼 축소 정책목표의 41%를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해들과 알찬미 품종 가치는 18억4000만원 정도로 측정된다”며 “생산유발효과 453억원, 취업유발효과 851명 등 파생효과도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12월 9일 [新농사직썰⑲]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