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뉴 삼성’ 변화·혁신...인사·조직 제도로 뿌리 내린다

미래지향적 인사제도 통해 젊은 인재 육성 및 수평적 조직 문화 확립

조직 내 창의·도전 정신 고취...다양한 의견 청취로 '현장 경영' 강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마치고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 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삼성전자가 29일 내놓은 새로운 인사제도 개편안의 핵심 키워드는 연공서열 타파를 통한 젊은 인재 조기 발탁·육성과 수평적 조직 문화 확립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으로 요약된다.

직급별 체류기간 폐지로 그동안의 성과주의 기조를 더욱 강화하면서 업무 평가 방식의 전환, 협업과 소통 강화를 통한 수평적인 기업 문화 구축을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식 조직 문화를 지향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이날 발표한 인사제도 혁신안은 성과주의 강화와 함께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 정착, 상호 협업과 소통 강화로 조직 시너지 효과 창출, 업무를 통한 기업 경쟁력과 임직원의 동반 성장 등으로 요약된다.

삼성전자는 이날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전격 통합, 임원 직급단계를 과감히 축소하고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을 폐지하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또 업무 성과 평가 방식을 '엄격한 상대평가'에서 성과에 따라 누구나 상위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한편 임직원간 업무 진행에 대해 상시 협의하는 '수시 피드백'을 도입해 성과 창출을 통한 기업과 인재의 동반 성장을 유도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이번 인사제도 개편안은 이재용 부회장이 그동안 강조해 온 뉴 삼성으로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행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조직 내 창의와 도전 정신 고취를 위해서는 인사 제도 개편을 통한 조직문화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격적인 발탁 승진 가능해져…이재용의 성과주의 기조 강화

삼성이 이번 인사제도 혁신안을 통해 직급별 체류기간을 폐지하고 성과와 전문성을 다각도로 검증하기 위한 '승격세션'을 도입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파격적인 발탁 승진이 가능해졌다.

그동안은 '직급별 표준체류기간'이 직원 승격의 기본 조건이 되면서 기존 CL2(이전 사원·대리급), CL3(과·차장급)는 각각 10년 가까이 지나야 승격이 가능했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승격세션’에서 업무 성과와 전문성을 입증만 하면 직무연한이나 근무년수와 관계없이 승격이 가능해진 것이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30대 임원과 40대 사장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삼성은 기존에도 인사에서 그 어느 기업보다 성과주의 기조를 강조하면서 발탁 승진이 많은 편이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회사 인트라넷에 직급 및 사번 표기를 삭제하고 매년 3월 발표된 승격자 발표도 폐지하는 한편 상호 높임말 사용을 공식화한 것도 기업 내 수평적 문화를 정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직원들간 상호 직급을 모르게 해 업무나 소통 과정에서 직급이나 연차가 개입될 여지를 없애 능력과 전문성 중심으로 수평적 조직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업무 평가방식을 기존 엄격한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해 그동안 우수한 인재임에도 성과에 걸맞는 평가를 받지 못했던 부작용을 줄이는 한편 임직원들간 상호 협업과 소통 강화로 조직 내 시너지 효과 창출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도록 했다.

JY의 뉴 삼성 변화·혁신 속도 가속 페달 …인사·조직개편 주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8월6일 경기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여성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삼성전자

이번 인사제도 개편은 이재용 부회장이 그동안 '뉴 삼성'으로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 온 터라 더욱 주목을 받아 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며 뉴 삼성 구축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또 이달 중순 이뤄진 미국 출장 중에 실리콘밸리 소재 DS미주총괄(DS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이기만으로는 이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며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 새로운 삼성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새로운 삼성'으로의 변화와 혁신을 재차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를 위한 실천적 행동으로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직원들과 소규모 간담회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 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3월 스마트공장 근무 직원들을 시작으로 그해 6월과 7월 각각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연구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또 스타트업(신생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 임직원(2020년 7월),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는 워킹맘 직원(2020년 8월) 등과 잇따라 만남을 의견을 청취했다.

이번 인사제도 혁신안도 이 부회장이 청취한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여성인력 간담회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산업은 물론 직장 생활, 가정 생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차제에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고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며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을 예고한 바 있다.

회사가 먼저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임직원 의견을 청취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방안 마련에 앞서 임직원 온라인 대토론회 및 계층별 목소리는 물론, 노사협의회·노동조합 및 각 조직의 부서장과 조직문화 담당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하며 세부 방안을 수립한 것도 이 부회장이 강조해 온 현장 경영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제도 혁신안 발표에 이번주 중 발표될 연말 정기 사장단·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에도 더욱 이목이 쏠릴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 제도 개편안은 선제적으로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이 부회장이 주도해 나갈 뉴 삼성으로의 혁신이 인사와 조직 내에서 어떻게 반영돼 나타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