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등록대수 2437만대…승용차만 2000만대 육박
생필품化된 승용차, 사치품 취급해 징벌적 과세…합당한가
개소세 인하 일몰 폭탄 맞을 차기 대통령 후보들, 폐지 고민해야
80년대 중반. 대략 88서울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승용차는 부의 상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벤츠나 BMW 같은 으리으리한 외제차는 물론이거니와 하다못해 포니II 같은 소형 국산차만 몰고 학교에 나타나도 "너희 집 잘 사는구나" 소리를 들었다.
그런 걸 가진 부자들에게 특별한 세금을 물리는 것도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승용차 구매자들이 부담했던 특별소비세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없었다.
아니, 국민 상당수는 그런 게 존재하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1985년까지만 해도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111만대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절반가량은 화물차, 승합차 등이고, 이를 제외한 순수 승용차는 고작 56만대였다. 당시 인구가 4000만명이었으니 승용차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상위 1%의 전유물이었고, 특별소비세를 내는 이들도 극히 한정됐다.
특별소비세는 2008년부터 이름이 개별소비세(개소세)로 명칭이 바뀌지만 사치성 품목, 혹은 소비 억제 품목에 중과(重課)한다는 징벌적 취지는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정부는 불과 6년 전까지 세탁기, 컬러TV,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까지 사치품으로 분류하며 우리를 후진국 국민 취급했다.
생필품이 된지 오래인 가전제품에 대해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은 2015년부터 그만뒀지만, 어느덧 생필품에 준하는 제품이 된 자동차에 대한 개소세 부과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지금의 자동차는 소위 '쌍팔년도'때와는 전혀 다른, 흔하디 흔한 존재가 됐다. 지난해 자동차 등록대수는 2437만대, 그 중 승용차는 1986만대에 달했다. 인구 5000만명의 40%에 육박하는 숫자가 보급된 승용차를 사치품이라 주장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만 18세 이상 인구가 3000여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승용차 보급률은 절반을 넘어선다.
정부는 승용차에 붙는 개소세를 막대한 세수 확보 수단은 물론, 경기 조절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 경기 침체시 소비 활성화 차원에서 대당 5%씩 부과하던 개소세율을 일부 조정하며 승용차 구매를 유도하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임기의 대부분을 개소세 인하로 생색을 냈다. 2018년 7월부터 2019년 말까지 1년 6개월간 개소세율은 3.5%였고, 2020년 1~2월은 다시 5%, 2020년 3~6월은 1.5%였다. 2020년 7월부터 그해 말까지 3.5%를 적용키로 했다가 6개월 단위로 연장을 거듭하며 결국 내년 6월까지 2년간 같은 세율을 유지하기로 했다.
개소세를 깎아줬다고 국민들이 황송해할 일도 아니다. 개소세 부과 시점이 출고 기준인데다, 정부가 개소세 인하 연장 여부를 일몰 시점이 임박해서야 발표하는 관계로 승용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때를 못 맞춰 손해를 보지나 않을까 애를 태워야 했다. 그 와중에 2020년 1~2월 차량을 인도받은 소비자들은 단지 재수가 없었다는 이유로 개소세 조정 4년 기간 중 최악의 세금 폭탄을 맞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국민들이야 기분이 좋건 말건 정책적 목적이라도 달성했으면 모르겠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물론 지난해 개소세 인하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내수 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기 처방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자동차는 한 번 구매하면 길게는 10년씩 사용하는 내구재다. 개소세 인하로 구매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지만 구매 횟수를 늘리진 않는다.
즉, 개소세 인하는 미래의 수요를 당겨쓰는 것에 불과하다. 개소세 인하 일몰과 함께 그동안 많이 팔린 대수에 상응하는 판매 절벽이 불가피하다. 소비자 입장에선 난데없이 차 가격이 수십 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오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현 정부는 개소세 인하를 내년 6월까지 연장하며 폭탄을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 생색만 실컷 내놓고 뒷감당은 후임자에게 맡긴 셈이다.
내년 5월 새로 출범할 정부는 당장 한 달 뒤에 갑자기 오른 개소세의 존재 이유에 대해 국민들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놔야 한다. 개소세 인하를 연장해 시간을 벌더라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4년 동안 깎아줘도 문제없던 개소세를 다시 올리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국에 2000만대나 돌아다니는 승용차를 사치품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원래 5%였으니 그대로 하겠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일 만큼 우리 국민들이 순진할까.
대선주자들 중 누군가는 이 골치 아픈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 그들은 대선을 앞두고 제각기 국민들을 위해 불합리한 제도를 뜯어 고치고 바람직한 정책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참에 근거가 불분명한 승용차 개소세의 폐지나 영구적 인하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