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예보 있었지만 다행히 약한 빗방울에 그쳐…한파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수능날 아침
수험생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친구들과 놀 것"
배웅하는 부모님 보고 우는 학생들…자식 모습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는 '애틋한 모정'
2022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8일 전국의 수능 시험장은 두 번째 '코로나 수능' 답게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등학교 3학년 선배들을 응원하러 나온 학교 후배들의 시끌벅적한 모습은 눈에 띄게 줄었고, 긴장하는 수험생들과 그런 자식들을 애틋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로 넘쳐났다.
전날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아침 비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수험생들이 입실하기 전까지는 약한 빗방울만 간간히 떨어지고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다.
오전 6시 30분께 서울시교육청 제12시험장과 13시험장으로 지정된 명덕여고와 명덕외고 정문 앞. 일찍 수험장을 찾은 학생들이 여유롭게 문 안으로 들어섰고 방진복을 입은 방역직원들이 입실하려는 학생들의 발열체크를 돕고 있었다.
강서 화곡고등학교에서 수능을 치르러 온 고등학교 3학년생 권모군은 "수험장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일찍 왔다"며 "부모님 응원하러 오시는 것도 부끄러워서 빨리 온 것도 있다"고 멋쩍어했다.
같은 학교 박모(18)군은 "국어나 영어 같은 문과 과목이 저한테는 좀 어렵고 수학·과학이 쉬운 것 같다"며 "전날 일찍 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군은 "학교로 걸어올 때까진 긴장됐지만 막상 도착하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며 "끝나면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친구들과 놀 것"이라고 밝혔다.
오전 7시 15분께부터는 많은 수험생들이 몰리면서 붐비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은 무미 건조한 표정으로 수험표를 보여주며 입장했고, 막 자다 깨서 나온 듯한 부은 얼굴의 학생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생 신모(18)군은 "수능이 끝나면 정말 홀가분할 것 같다"며 "앞으로는 논술준비도 해야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긴 하다"고 말했다. 신 군의 친구인 박모(18)군은 "오늘은 고생했다는 마음으로 놀 것 같지만 앞으로는 면접준비를 해야 한다"며 "시험 끝나고도 제가 웃고 있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덕원여고 서모양은 "사탐과목을 열심히 공부했기에 점수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 어제 갑자기 후배랑 친구들한테서 응원의 문자가 많이 와서 든든하다"며 "끝나면 염색부터 할 것"이라고 좋아했다. 재수생 황모(19)씨는 "열심히 공부했던 만큼 다 자신있다"며 "끝나면 바로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생 우모양은 "자신 없는 과목은 영어지만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것 같다"며 "다들 잘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고등학교 3학년생 홍모양은 "엄마가 도시락 메뉴는 비밀이래서 궁금하지만 점심시간에 열어봐야겠다"며 "사실 수시전형에 합격했지만 인생에 한 번뿐인 고3 수능이라서 시험 보러 왔다"고 말했다. 경복비즈니스고등학교에서 온 학생 2명도 "저희는 취업계 고등학교 학생이지만 수능이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재미삼아 보러 왔다"며 즐거워했다.
이날 명덕외고와 명덕여고 정문 앞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담담한 모습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서로 길게 포옹하며 "교실 잘 확인하고 밀려 쓰지 말거라!", "잘하고 와!" 등 학부모의 자식을 향한 애틋한 응원이 계속됐다. 또 배웅하는 부모님을 보고 학생이 울자 "울긴 왜 울어!"하며 등을 때리고 학생을 학교 문 안으로 밀어 넣거나 "엄마! 내 도시락!" 하며 허둥지둥 소지품을 챙기는 수험생 등 웃지 못할 모습도 곳곳에서 연출됐다. 학원 교사가 플래카드를 들고 와 학생을 응원하자 해당 학생이 감격해 하기도 했다.
양천구에 거주하는 박모씨 부부는 "딸이 평소처럼 잘 할 것으로 믿는다"며 "내가 학력고사를 봤을 때처럼 이제 딸이 다 커서 수능을 치른다는 것만으로 대견하다"며 기특해 했다. 양천구 주민 서모(48)씨는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운 심정"이라며 "그냥 평소 실력만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전달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학부모 류모(48)씨는 "아이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스프랑 샐러드를 부탁해 간단히 도시락을 챙겼다"며 "긴 시간 고생했고 또 노력한 만큼 실력발휘 잘하고 후회없이 시험 잘보고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정문으로 들어간 학생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한 수험생의 어머니가 학생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계속 자리를 못 뜨자 출근해야 하는 배우자가 돌아가기를 재촉했다. 또 배웅할 때까진 덤덤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자식이 학교 안으로 사라지자 펑펑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도 있었다.
한편, 명덕여고 앞에서 5년째 카페를 운영해온 조모씨는 "물론 코로나 여파도 있겠지만 수능날 학교 정문 앞 분위기가 해마다 차분해지는 것 같다"며 "과거와 달리 학부모도 학생을 들여보내면 곧바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