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臺 생산기지 구축 vs 반년째 최종 결정 못해
각국 정부·기업 전폭 지원 속 사업 확장 속도 TSMC
삼성 2030년 비메모리 1위 위해 정부 적극 지원 필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타이완 TSMC가 잇따른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경쟁 우위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외국 정부와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손잡으며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확정한 미국 현지 파운드리 투자를 단행할 지역도 6개월째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정부도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미국·일본·타이완 등과 달리 적극성이 떨어져 기업과 기업인이 홀로 뛰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 5월 말 투자를 확정한 미국 제 2의 파운드리 생산기지 구축 지역과 결정 시기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경쟁자인 TSMC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자국에도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래 투자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6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D램·낸드플래시 제조 공장을 건립했는데 지난 2011년 파운드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해 운영해 오고 있다.
올 들어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을 발표하고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신규투자 계획을 공식화했다.
오는 2024년 말부터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목표로 후보지로 꼽히는 텍사스·애리조나·뉴욕 등 주 정부들과 협상이 반년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 신규 반도체 공장 부지로 텍사스주 오스틴시와 테일러시가 가장 유력한 후보 지역으로 대두고 있다.
최종 지역 결정이 장기화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 매듭을 지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달 말경 미국 출장길에 나서 제 2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투자 공식화 이후 지역 결정에만 반년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파운드리 시장의 절대자인 TSMC는 광폭 투자 행보에 더욱 속도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TSMC는 지난 9일 타이완 남부 가오슝 지역에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와 28나노미터 웨이퍼 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공장은 내년에 착공해 오는 2024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TSMC는 일본 소니와 함께 자회사(JASM)를 설립해 일본 구마모토현에 22나노미터와 28나노미터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TSMC와 소니의 자회사 소니 세미컨덕터 솔루션즈(SSS·Sony Semiconductor Solutions)가 각각 70억 달러(약 8조2580억원)와 5억 달러(약 59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공장은 내년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24년 말 이전에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으로 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월 4만5000장의 캐파(CAPA·생산능력)을 롹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TSMC는 이미 지난 4월 반도체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앞으로 3년간 1000억 달러(약 113조23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 120억 달러(약 13조4000억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한 상태다.
반년 남짓한 시간에 각각 다른 3개 지역에 신규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을 확정하면서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모습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52.9%로 삼성전자(17.3%)의 3배가 넘는다.
TSMC의 광폭 행보에는 자국뿐만 아니라 헤외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타이완 정부는 TSMC의 민영화 이후 6%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자본 뿐만 아니라 인력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TSMC 본사가 있는 신주과학단지는 타이완 정부가 구축한 대규모 연구개발(R&D) 단지로 TSMC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도 깔려 있다. 정부 차원에서 장학금 제공과 함께 산학연계 교육모델을 통해 관련 인력 양성과 인재 영입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다.
미국과 일본도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TSMC에 구애의 손짓을 보내며 생산시설 구축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도 종합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만 화려한 말과 달리 행동은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다는 게 업계의 체감이다.
지난 5월 'K-반도체 벨트 전략'을 발표하며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방안 등을 내놓고 있지만 공급망 구축과 재편에 있어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9년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시장 1위 도약이라는 포부를 밝히자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아직 속도가 제대로 붙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해외 기업들과 제대로 된 경쟁을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기업과 기업인이 나홀로 동분서주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최근 이뤄진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자료 제출과 같은 무리한 요구도 정부가 좀 더 원활한 소통과 조율에 나서 기업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간 반도체 패권주의 경쟁 속에 전 세계 각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과 보호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