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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로봇과 비행체를 만들 준비가 돼 있는가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1.11.08 07:00 수정 2021.11.08 05:08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현대차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양산능력과 기술력 시너지 기대

물량 배정 때마다 진통 겪는 노사관계 지속되면 미래 장담 못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2족 직립 보행 로봇 아틀라스, 현대자동차 수소전기차 넥쏘 이미지. ⓒ현대자동차그룹

2013년 구글로부터 미국의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소프트뱅크는 2020년 지분의 80%를 현대자동차그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매각한다.


‘투자의 귀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경영권을 팔아치운 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미래 가치가 별 볼일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서일까?


아니다. 그는 여전히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20%를 손에 쥐고 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100% 소유하는 것보다 현대차그룹에 경영권을 넘기고 20%만 유지하는 게 미래 자산 가치를 늘리는 데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 판단의 근거는 완성차에서 로보틱스, 개인용 비행체(PAV)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는 정의선 회장의 비전과, 현대차그룹 내부의 산업용 로봇 수요,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기간 완성차 사업을 통해 구축한 현대차‧기아의 대규모 양산체제와 양산 노하우에서 찾을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최대 주주로 군림하며 스스로 성장하길 기다리는 것 외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기술적으로 협업하고, 초기 수요를 창출해주며, 대중이 수용할 만한 제품이 개발됐을 때 즉각 대량생산을 통해 시장에 공급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기술력 뿐 아니라 규모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로봇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소프트뱅크가 가진 20%의 지분 가치는 이전에 가졌던 100% 지분을 월등히 상회할 수 있다.


물론 80%의 지분을 가진 현대차그룹도 세계적인 로봇 기업을 울타리 안에 두고 미래 성장동력의 한 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 투입된 4족 보행 로봇 스팟 기반의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 ⓒ현대자동차그룹

하지만 이 장밋빛 청사진에는 찜찜한 구석이 하나 있다. 양산체제의 주축인 국내 공장이 과연 완성차에서 로봇과 비행체로의 생산 전환에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국내 공장을 장악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그걸 수용할 지 여부가 문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유연성이 낮기로 유명하다. 고용과 해고를 통한 인력조정 뿐 아니라 직무전환 측면에서도 경직성이 심하다.


노조의 힘이 강한 현대차와 기아는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노조와 협의를 하느라 양산 돌입이 늦어지고, 생산 효율화 측면에서 공장별로 물량 배정을 바꾸는 데도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한다.


작업 난이도가 이전보다 높다고, 혹은 야근‧특근비를 보장받을 물량을 놀고 있는 공장으로 옮긴다고 반발하며 수시로 공장을 멈출 수 있는 게 노조의 막강한 파워다.


이런 이들에게 자동차 대신 로봇이나 비행체를 조립하도록 하는 게 쉬운 일일까? 자동차 조립보다 더 세심한 집중력이나 좀 더 힘든 자세를 요할 수 있는 작업을 이들이 순순히 수용할까?


정의선 회장은 “미래 사업 구조는 자동차가 50%, UAM(도심항공모빌리티)이 30%, 로봇이 20%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의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진 않더라도, 자율주행과 공유경제의 가속화에 따른 자동차 수요 감소는 필연적이고, 현대차그룹은 지금의 주력인 자동차 외에 다른 제품으로 공백을 채워야 생존할 수 있다.


국내 공장 근로자들이 로봇과 비행체를 생산할 능력과 마인드를 갖추지 못한다면 주력 생산기지는 해외 공장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공장은 줄어드는 자동차 수요로 인해 공동화(空洞化)에 직면해야 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들이민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론이 정당화되려면 팰리세이드‧스타리아 생산 배정을 놓고 빚어진 울산 4공장과 전주공장 노조간 분쟁, 람다엔진 생산 배정을 놓고 빚어진 울산공장과 아산공장 노조간 분쟁 같은 일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현장 근로자들이 오랜 기간 쌓아온 생산 노하우는 분명 현대차그룹의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산업 패러다임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연성을 저해하는 노조의 기득권은 심각한 걸림돌이다.


격변기에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과 연구개발(R&D) 투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보유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근로자들도 팰리세이드와 스타리아 뿐 아니라 로봇과 비행체, 나아가 그 어떤 것도 만들 준비가 돼 있어야만 생존의 길에 함께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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