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단독접견 "평화 모멘텀 기대"
프란치스코 교황 "평화 도우러 갈 것"
김정은, 바티칸에 초청장 보낼지 주목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 땅을 밟게 될까. 29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교황청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방북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유럽순방 최대 과제였던 '교황의 방북 수락'을 받아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교황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배석자 없는 단독 면담을 하며 "교황님께서 기회가 돼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공식 방북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며 "다음에 꼭 한반도에서 뵙게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면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에도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방북의 목적을 종교적 배경 보다는 "평화를 위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띄울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전방위 '교황 방북 프로젝트' 가동
文-국회의장-국정원장 '물밑 작업'
그동안 문 대통령은 교황 방북 추진에 공을 들여왔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교황의 방북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곧장 다음달 바티칸 교황청을 찾아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넉달 뒤인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교황의 방북 추진은 무산됐다.
올해들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무산된 교황 방북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하기 시작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지난 7월 5일 전남 목포 신정동 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해 "교황의 방북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며 관련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박병석 국회의장은 7월 9일 바티칸을 찾아 교황청 2인자인 피에르토 파롤린 추기경과 만나 "교황께서 북한에 가고 싶어한다"는 화답을 받아왔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5월 미국 워싱턴에서 교황의 측근인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을 별도로 만나기도 했다.
美-쿠바 적대관계 청산 결정적 역할
2018년 방북성사 직전단계에서 무산
문재인 정부는 교황이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이자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장면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북미정상회담을 뛰어넘는 이벤트가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한반도 평화에 방점이 찍힌 만큼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간 교황의 외국 방문은 '정치적 파장'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5년 반세기 이상 적대 관계였던 쿠바와 미국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며 양국 간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외교관계를 회복하는 데 상징적 역할을 했다.
이후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급진전해 2015년 4월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50여년 만에 파나마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교황의 '종교탄압' 독재 국가 방문
김정은 '부담' 안고 수락할지 의문
하지만 교황의 방북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난관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청에 '공식 초청장'을 보낼지도 미지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교황의 방북은 북한과 바티칸 교황청 간의 외교 문제"라고 공을 넘겼다. 결국 교황 방북 성사 여부의 핵심 열쇄는 김 위원장이 쥐고 있는 셈이다.
당장 외교가 안팎에선 북한이 코로나19 방역 비상체제를 유지하며 빗장을 걸어 잠근 상황에서는 방북이 성사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인 교황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김 위원장에겐 정치적 부담이다. 교황의 방북이 개혁개방과 종교 자유의 바람을 일으키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은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 폴란드를 수차례 방문해 대규모 종교행사를 개최하면서 독재정권의 붕괴에 일조했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공사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북한은 소련 해체로 외교적 고립 위기에 처했던 1991년 교황 초청을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했지만, 천주교 신자가 급증하는 등 종교 열풍이 불 것을 우려해 TF를 출범 두 달 만에 해산시켰다.
2000년에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교황 방북을 요청했고, 교황은 남북 양쪽에서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세부 조율과정에서 북한과 이견을 줄이지 못했고, 요한 바오로2세 교황 방북은 또 다시 무산됐다.
교황청 입장에서도 김정은 정권이 준비한 정치 이벤트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비핵화가 선행되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도 변수다. 미국의 소리(VOA) 28일 보도에 따르면,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교황의 방북에 대해 "김정은이 무척 갖고싶어 하는 지위와 위신, 관심을 주게 될 뿐"이라며 회의적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