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당내 안티테제로 여겨졌던 이재명 후보의 ‘문재인 계승’ 선언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주류 출신으로 당내 기반이 약한 이 후보에게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이 후보는 당내 비토세력도 완전히 포용하지 못한 상태다. 더구나 대장동 게이트 의혹으로 이 후보는 ‘수사 범주’에 있는 불안한 위치다. 현재 권력이 차기 대통령을 만들 순 없어도, 떨어뜨리는 것은 가능하다는 게 정치판 진리다.
문 대통령과 이 후보의 만남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후계자 지명’처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차기 정부가 완수해야 할 과제를 당부하고, 이 후보는 “제가 하고 싶다”고 답하는 식이다. 나아가 “대통령님과 제 생각이 너무 일치해서 깜짝 놀랐다”, “생각이 너무 똑같다”며 연신 ‘동일체’성을 강조한다.
아직 막강한 문 대통령의 영향력에, 소수지만 민주당 내에선 차기 대선을 ‘문재인으로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높고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도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민주당을 상회하고 있고,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만큼은 압도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현재 권력과 각을 세우지 않고 당선된 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정권 말이 되면 국민적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기 마련이고, 이는 새로운 정권에 대한 희망으로 투영되는 것이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당 후보는 현 정권과 마냥 거리를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 몸’이 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당선은 정권교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이 후보의 역학 관계가 그만큼 복잡하다는 의미다.
조짐은 이미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의뢰로 지난 25~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권교체’를 원하는 응답이 53.0%로 절반을 넘었다. ‘정권유지’가 좋다는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지역별로 호남과 충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38.2%였고, 부정평가는 56.7%였다. 정권 말기 지지율 반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이 후보는 어떻게 넘어설까. ‘문재인 계승’을 선언한 마당에 이념적 차별화나 주도세력 교체를 어필하긴 어렵다. 기본시리즈 정책과 추진력으로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경선 과정에서, 기본주택은 대장동 게이트로 타격을 받아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친문 의원 70여 명이 27일 ‘문재인 정부 5년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점검하고, 차기 정부가 이뤄야 할 과제를 선정하는 게 목적이다. 자그마치 두 달 동안 이런 토론회를 이어간다고 한다. 이 무대에서 주연은 문 대통령과 ‘친문’이며, 이 후보는 여전히 ‘조연’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