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상징적 선언' 넘어
'비핵화 입구론' 군불떼기
北, '상징적 종전선언' 반대
"유핵·공존 꾀하고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한반도 종전선언의 '의미'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정치적 선언으로서 '대화재개의 마중물'로 간주됐던 종전선언이 북한의 입장 표명 등을 계기로 '비핵화 협상의 첫 단추'로 몸집을 불려가는 모양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5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관한 NK포럼에 참석해 "종전선언 제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며 △신뢰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실현을 위한 대화 프로세스의 입구 △대북 적대정책이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 등을 거론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방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에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이제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상에 들어가자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0·4 공동선언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 역시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한 바 있다면서도 "비핵화라는 상황이 더해지면서 어떤 시기에 비핵화의 협상과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대한 문제를 한미 양국이 협의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전선언이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 효과를 가지고 구사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보다 전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이 평화체제 구축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비핵화 협상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에 대한 '실질적 의미'는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노 본부장은 이날 포럼에서 종전선언이 '비핵화·평화를 위한 대화 프로세스의 입구'라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에 국한되지 않고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종전선언 관련 '北 조건' 높아져"
"韓美, 北核 인정 여부 결정해야"
문제는 '비핵화 입구론'으로서의 종전선언이 북한에 대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전제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하노이 노딜로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얘기했다"며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조건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종전선언만 따로 떼어내 정치적 선언을 먼저 하는 것은 주요 당사국인 북한이 반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북한 스스로 한반도 군사력 균형과 세력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개발하고 있는 핵 능력을 인정받는 가운데 세력균형에 입각한 종전선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미가 주적(主敵)이 아니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언급하며 "북한 스스로 주적론을 수정하고,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 세력 균형에 입각한 종전선언 및 관계 개선을 진행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측이 한미가 기존에 추진했던 '비핵화·평화 프로세스'에 선을 긋고 '유핵(有核)·공존 프로세스'를 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 원장은 종전선언 성사를 위해선 북한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과 미국이 △현재 북핵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향후 한반도 핵 균형 및 세력 균형을 인정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으면 (종전선언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미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고 군비통제 협상을 시사해야만 종전선언 논의가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美 "다양한 아이디어 지속협력"
종전선언 관련 '구체적 입장' 삼가
한편 미국은 종전선언과 관련한 구체적 입장 표명을 삼가면서도 가능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 모양새다.
최근 방한한 성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을 포함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니셔티브를 모색하는 데 지속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섣부른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으로 '안보에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트럼프 행정부보다 '과감한 대북정책'을 펴긴 어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핵시설 신고를 전제로 한 '출구' 성격의 조건부 종전선언 추진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