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우연과 상상’ 상영
봉준호 감독과 만나 100분 스페셜 대담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관계와 상실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졌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에는 ‘위드 코로나’를 표방하며 이전과 같은 모습을 회복했다. 레드카펫 행사가 2년 만에 부활했고, 개·폐막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들도 다시 열리게 됐다. 출품 영화도 모두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다만 극장 내 좌석의 50%만 운영되며, 모든 행사장에도 지침에 맞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용된다. 해외 게스트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도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국내 영화인들은 대부분 참석했지만, 해외 게스트들은 2~30여 명에 그쳤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거장 레오 카락스가 칸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됐던 ‘아네트’로 6년 만에 부산을 찾는가 하면,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두 편을 들고 온 일본의 차세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가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영화제를 빛내고 있다.
특히 개막식 다음 날인 7일 상영된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 관객들에게 관계와 소통, 상실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며 거장의 신작을 만나는 기쁨을 실감하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나오는 동명의 단편을 영화화한 이번 작품은 상실을 겪은 한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하루키 소설의 특징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냈다.
어느 날 아내의 외도를 발견하지만 왜 그랬냐고 물어보지 못한 상태로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연극 감독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분)가 2년 후 한 지방의 연극제에서 ‘바냐 아저씨’를 준비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곳에서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 상대를 출연 배우로 만나게 되고, 운전 기사인 20대 여성 미사키(미우라 도코 분)와 차 안에서 대화를 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에는 가후쿠가 죽은 아내에게서 들은 드라마 각본의 내용, ‘바냐 아저씨’의 대사,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놓는 속내 등 각종 이야기와 대화들이 파편처럼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침묵과 소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바냐 아저씨’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수어까지.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하면서도 마음을 나누지만,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아내와의 대화에선 진심을 읽어내지 못했던 가후쿠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대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가후쿠와 미사키가 마침내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는 순간까지. 깊은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꺼내놓는 감정들을 따라가는 흥미가 3시간의 러닝타임을 잊게 만든다.
정해진 답을 제시하기보단, 열린 전개로 보는 이들의 성찰을 유도하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작품을 보고, 또 이를 함께 나누며 의미를 확장시키는 ‘영화 관람’의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공개 이후 봉준호 감독과 만나 대담을 나누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객들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영화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소통의 의미를 실감케 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행사 초반, 영화 축제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