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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박정민의 '기적'은 바로 이 순간


입력 2021.09.12 14:12 수정 2021.09.12 11:1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15일 개봉

"윤아와 호흡 기뻐"

배우 박정민은 매 작품마다 전작의 얼굴을 지워내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낸다. 오롯이 캐릭터에 어울리는 옷을 소화하고야 마는 재주로 그를 대표하는 한 작품을 꼽기가 힘들다. '파수꾼', '타짜: 원 아이드 잭', '동주', '시동', '그것만이 내 세상',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깊게 낙인 시켜버린다.


ⓒ롯데 엔터테인먼트

그런 박정민이 이번에는 '기적'의 간이역을 만드는 꿈을 가진 수학 천재 정준경으로 분했다. '기적'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인 준경(박정민)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한민국 최초 민자 역사인 양원역이 모티브가 됐다.


박정민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출연을 결정했다. 준경이의 몸과 입을 통해 누구나 꿈 앞에서 좌절을 맛본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준경이 마을 사람들과 양원역을 만들었지만 기차는 서지 않죠. 반쪽짜리 꿈이라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준경이가 처한 사면초가 상황이 마음에 닿더라고요. 무력감도 들었고요. 꿈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무력감과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그때의 마음에 가장 공감했어요."


준경은 지금까지 박정민이 연기했던 캐릭터들보다 일명 '순한 맛'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채롭다. 박정민은 꿈을 이뤄내는 소년, 첫사랑에 빠진 남학생, 서먹한 아버지와 가까워지는 아들의 모습을 시시각각 보여준다. 박정민이 준경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우로서 하던 고민도 한몫했다.


"연기를 확장해야겠다 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하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역들은 색깔이 확실했었어요. 이장훈 감독님은 그렇지 않은 제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박정민이라는 현장에서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해주셨죠. 이런 것들에 많이 끌렸어요. 제가 연기를 하면서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심했는데 이번에는 감독님의 말을 따라가보자 싶었죠."


'동주'에서는 일본어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태국어를 하던 박정민은 이번에는 사투리 연기에 도전했다. 봉화의 사투리가 일반적으로 매체에 노출돼왔던 경상도 사투리 억양과는 달라, 박정민에게 최고의 난제기도 했다.


"준경을 연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했는데 그중 사투리가 가장 어려웠어요. 사투리를 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사투리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연기를 제대로 못하진 않을까란 걱정도 들었어요. 다행히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워요."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평면적으로 꿈을 향해 나가는 준경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후반부로 향할수록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에 무게가 쏠린다. 이야기가 깊어지며 보여줘야 하는 감정의 무게도 달라 그 부분을 이장훈 감독과 대화를 나누며 맞춰나갔다.


"1차원적으로 간이역을 짓기 위한 준경이의 꿈이라고 보이죠. 어떤 식으로 보여야겠다는 계산을 크게 하진 않았지만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정서나 감정들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고민했어요. 어느 정도의 감정을 보여줘야 할지가 잘 모르겠더라고요. 매신마다 감정이 크게 다가와서 장면마다 연기하기 쉽지 않았어요."


박정민은 오래전부터 소녀시대 팬이었음을 밝혀왔다. 그는 윤아와의 만남이 꿈같았다고 밝혔다. '기적' 속 첫사랑을 깨닫는 준경과 라희(임윤아)의 싱그러운 케미스트리는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준비를 많이 해왔더라고요.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는데 회차가 거듭되면서 편해지면서 재미있게 촬영을 마쳤어요. 윤아와 연기하는 동안에 '내가 얘 앞에서 연기를 못하면 어쩌지'라는 마음이 안 들었어요. 사실 저는 그런 걱정을 조금 하거든요. 그런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카메라에 잡혀서 더 예쁘게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이성민과는 부자 연기를 했다. 적막이 가득한 준경과 태윤(이성민)의 모습은 현실 부자라는 평이 자자했다. 박정민은 이성민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선배님과 함께하며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시지?'란 궁금증이 생겼어요. 밑에서부터 뿜어내는 에너지가 대단해요. 이 역할들에 대한 해석들을 보면서 놀라운 지점도 많았고요. 선배님의 나이가 됐을 때 나는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땅 위에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며 양원역을 짓는 과정에 박정민도 연기를 하며 함께 했다. 다 만들어졌을 땐 울컥하는 마음이 들면서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벽돌 하나에도 자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여러 사람의 염원과 꿈이 들어가 있는 거잖아요. 무생물이어도 꿈이 들어가 있다면 자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죠. 어느새인가 영원역만 보면 눈물이 났어요."


박정민은 왓챠가 기획하는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에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참여했다. 박정민이 연출한 영화는 '반장선거'로 배우 김담호, 강지석, 박효은, 박승준 등이 출연한다.


"촬영은 이미 다 끝났고요. 계획과 포부는 잘 만들어본 자였는데 지금은 좋은 경험으로 만족합니다. 하하. 감독님들이 영화를 공개했을 때 하고 싶은 말이 왜 그렇게 많은지 공감했어요. 공개가 되면 저도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기다려주세요."


마지막으로 박정민의 인생에서 일어난 '기적'같은 일을 꼽아달라 부탁했다.


"영화배우가 된 일이요. 영화를 찍고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런 것들에 저에게 너무 기적같은 일입니다. 제 일상을 너무 평범해요. 순간의 작은 기적들이 쌓여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10년 전과 지금 제 모습을 보면 많이 다르거든요. 10년 후에는 지금을 바라보며 기적이라고 느끼고 있겠죠?"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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