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 발생하는지 보려 할 것"
국제사회로부터 코로나19 백신을 할당받은 북한이 일부 물량에 대한 양보 의사를 밝힌 가운데 북한이 백신 효과 및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나기 샤피끄 전 세계보건기구(WHO) 북한 프로그램 담당관은 4일(현지시각)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합병증 및 효과에 대한 우려가 보고되면서 북한이 백신 접종을 망설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잠재적 부작용을 우려하고, 시노백 백신은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우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글로벌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로부터 배정받은 중국산 시노백 백신 297만 회분을 코로나19로 심각한 영향을 받는 다른 나라에 재배정해도 된다는 뜻을 코백스 측에 전달한 바 있다.
북한은 최근 국제사회가 제공하는 인도적 지원 물자 일부를 수용하면서도 '우리식 방역 체계 완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이 '코로나 청정국' 지위를 고수하고 있기도 한 만큼, 당분간 백신접종을 서두르지 않고 최소한의 교역만 진행하며 고강도 방역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은 앞서 코백스로부터 할당받은 AZ백신에 대해선 양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코백스 측은 올 연말께 백신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인도주의 활동을 위해 여러 차례 북한을 찾은 바 있는 박기(Kee Park) 하버드 의대 교수는 "북한은 자체적으로 실시한 봉쇄 덕분에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방역 조치에 대한 자신감 덕분에 북한이 더 인내심 있는 접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타국에서) 새로운 백신들이 접종됨에 따라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보려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 5월 WHO 최고의사결정기구 세계보건총회(WHA) 연례회의에서 백신 불공평에 반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며 "이번 조치는 상황이 심각한 빈곤국들에 백신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북한의 우려와 일치한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북한이 코로나 청정국 지위를 내세워 내구성을 과시하고 있지만, 코로나19는 물론 대북제재·자연재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열악한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이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인도주의 사업을 진행하는 비정부기구(NGO) 크로싱 보더스(Crossing Borders)의 정단(Dan Chung) 씨는 1990년대 대기근 상황을 복기하며 "'체면 세우기'는 한국인에게 강력한 문화적 동기"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90년대 식량 위기 당시 국제기구 관계자들에게 평양을 소개하며 식량 위기를 숨긴 바 있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당시 유엔 관계자들이 본 것은 평양의 잘 살고 건강한 사람들이었다"며 "세심하게 안내되는 여행 동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관계자들은 혼란스러워했고, 일부는 기근이 없다고 확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