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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콕’에 층간소음 급증…미온적 대책이 화근


입력 2021.08.21 07:04 수정 2021.08.20 16:43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코로나19 이후 층간소음 61% 늘어

이웃 간 흉기 난동에 방화까지

구속력 없는 중재가 대책 전부

환경부-국토부 업무 공조도 안 돼

지난 2012년부터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 집계 표. ⓒ국가소음정보시스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가정 내 생활이 늘어나면서 공동주택 층간소음 갈등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층간소음이 흉기 난동과 방화 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가운데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 부처는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지난 17일 경남 통영경찰서는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다가 흉기를 휘둘러 아파트 아래층 주민을 다치게 한 혐의(상해)로 A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 씨는 통영시 한 아파트 5층에 사는 주민으로 14일 밤 아래층 주민 B 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층간소음 문제로 약 1년 가까이 갈등을 빚어 왔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인천시 부평구 한 아파트에서 위층의 층간소음을 참지 못한 한 남성이 둔기로 윗집 현관문을 부수고 강제로 들어가려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관련 민원(전화상담)은 모두 4만2250건에 달한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2만6257건보다 무려 61%나 늘었다. 2012년 층간소음 민원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았던 2018년 2만8231건보다도 1만4019건(50%)가량 많다.


이처럼 층간소음 갈등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관련 대책은 분쟁 조정이 사실상 전부다. 아파트 등 공동주거시설에서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관리사무소에 중재를 요청하고 이후 갈등 해소가 안 되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이하 이웃사이센터)에 민원을 제기하는 형태다.


이웃사이센터도 층간소음 갈등 해소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현장 조사를 통해 기준치를 초과하는 소음을 확인하더라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분쟁 당사자들이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에 조정을 요청해야만 한다. 이 과정만 최소 1년 이상이다.


위원회 조정 방안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이번 통영 흉기 난동 사건도 아래층 주민 B 씨가 6개월 전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중재 상담을 요청했지만 갈등은 계속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태 변호사(경기도 환경분쟁조정위원)는 “분쟁 조정 신청을 해도 결정이 나올 때까지 3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도 불가피하게 이사를 하게 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인천 부평구 십정1동 3층 다세대 주택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세입자와 다투던 중 집 주인 A(72)씨가 불을 질러 B(27·여)씨와 남자친구 C(27)씨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시스
환경부-국토부는 인력·예산 핑계로 책임 미루기

현재 층간소음 민원 처리는 국토부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한다. 환경부는 한국환경공단·환경보전협회를 통해 이웃사이센터를 운영 중이고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 공동주택관리지원기구(LH센터)에 관련 업무를 맡기고 있다.


문제는 두 기관에서 대책 마련 속도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관 간 협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층간소음 업무 부담이 커진 환경부가 협조를 구했지만 LH센터가 인력과 예산 등을 이유로 거부한 적도 있다.


환경부는 지난 4월 LH센터에 협조를 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7월 1일부터 공동주택 가운데 LH에서 건설해 임대·분양한 경우 LH센터에 층간소음 관련 업무를 맡긴다는 내용이다. 환경부는 소음측정 기기와 현장 인력 교육까지 책임지기로 했다.


LH센터는 환경부 요청을 거절했다. LH센터는 “관련 장비와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7월 1일 시행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층간소음 민원 처리는 일률적이고 통일된 기준을 갖고 환경부 이웃사이센터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참고로 LH센터 경우 지난 6년 동안 2500건의 층간소음 민원을 접수하고도 현장 조사는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사실상 층간소음 해결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환경부와 국토부가 올해 초부터 이어온 관련 법령 개선 논의도 예산과 인력 등을 이유로 별다른 진척이 없다.


이처럼 정책 당국이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서로 책임만 미루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층간소음 문제가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우려한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소음의 불편함이 마음의 우울증으로 번지기 전에, 작은 불씨가 커져 분쟁의 불기둥이 되기 전에 갈등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며 “이 기간은 소음발생 및 인지 후 6개월 이내가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층간소음은 기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서도 “사적으로 보복하는 등으로 분쟁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건축 기준 개선, 리모델링 지침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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