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추진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워싱턴서 생소하다는 목소리 제기돼
문재인 정부가 4년여간 공들여온 대북 접근법이 워싱턴 조야에선 여전히 생소한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관철을 위해 미 정치권에 대대적 로비까지 벌였지만, 기본적 용어조차 안착시키지 못한 모양새다.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캐서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장은 19일 통일연구원 주관 웨비나에서 "워싱턴에선 많은 사람들이 (북한) 비핵화에 대해 생각하지만,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평화 프로세스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는 것도 아니다"며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고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만진 부분이 무엇인지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소장의 관련 발언은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 평화 프로세스 개념에 대해 설명한 직후 나왔다. 김 원장은 문 정부 대북구상의 골자를 간략히 소개하고 평화 프로세스 재개 방안에 초점을 맞춰 논지를 전개했다. 하지만 스티븐스 소장은 평화 프로세스 개념이 모호하다며, 사실상 문 정부 대북구상을 '모른다'고 선언했다. 한때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미국을 견인할 수 있다던 평화 프로세스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김 원장은 이날 웨비나에서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되 북한을 '시장(market)'으로 간주해 접근하는 것이 평화 프로세스의 골자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그는 "남북 간 경제교류가 남북 모두의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원장은 "평화 프로세스를 군비통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군사적 억지력 확보(peace-keeping) △최소한의 긴장완화를 위한 군비통제(peace-making) △시장 이익 공유와 평화체제 이행을 통한 한반도 평화공존(peace-building) 등 3가지 이론적 아이디어가 평화 프로세스에 모두 포함돼있다고 밝혔다. 확실한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해 협상 기반을 다진 뒤, 긴장완화 조치를 주고받으며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평화적 공존관계를 꾀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해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현 정부 안보 독트린을 △한반도 평화 정착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 성취로 요약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측 전문가는 이러한 문 정부 대북 접근법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평화를 말하며 군비증강에 나서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뜻이지만, 평화 프로세스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일 수 있다는 평가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부국장인 제니 타운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한국은 상반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문 대통령이 북한에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는 솔직하고 솔깃하지만, 안보 측면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다른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타운 연구원은 문 정부가 "국방예산 증액, F-35 도입, 미사일 지침 해제, 미사일 방어 시스템 추진,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 인공위성 발사 유예 같은 조건에 동의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