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탈레반, 경제협력 강화할 듯
장기적 관계는 '미지수'
'수니파' 신장 위구르 세력
탈레반과 연대 가능성
미국이 국익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밀어붙이기로 함에 따라 중동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이 6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중국이 '제국의 무덤' 리스트를 갱신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아프간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 알렉산더·칭기즈칸·영국·소련 그리고 미국의 전철을 중국이 밟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원하든 원치 않든 탈레반과 '교집합'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무엇보다 아프간 접경지대가 분리독립을 꾀하는 위구르족 거주지(신장)라는 점이 중국으로선 탐탁잖은 대목이다. 탈레반이 같은 이슬람 수니파인 위구르족을 지원할 경우 내부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만큼, 중국의 아프간 관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단 중국은 중동 정세변화에 촉각을 기울이며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미국·영국·독일 등 서방국가들이 아프간 주재 대사관 문을 닫으며 전격 철수에 나선 것과 달리,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현지 공관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국은 '내정불간섭'이라는 대외정책 기조를 앞세워 탈레반과 '윈윈'을 꾀하려 드는 모양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탈레반 측이 "결코 어떤 세력도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위해를 가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강조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탈레반 2인자'로 평가되는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의 회담 결과를 재확인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바라다르는 지난달 28일 톈진에서 왕이 부장을 만나 "탈레반은 아프간의 어떠한 세력도 아프간 영토에서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왕 부장은 당시 "중국은 아프간의 최대 이웃으로 주권독립과 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콕 집어 "중국의 국가 안보와 영토 보전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며 사실상 탈레반의 '통제'를 주문했다.
아프간에 뿌리내린 ETIM은 위구르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단체로, 과거 중국 내 테러활동을 지원한 바 있다.
중국과 탈레반은 경제 분야에서 접촉면을 늘릴 여지도 크다는 평가다. 중국은 아프간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고, 탈레반은 중국을 등에 업고 신속한 경제 재건을 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왕 부장과 회담을 가진 탈레반 2인자 바라다르는 "중국이 아프간 평화 재건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해 향후 경제 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며 "탈레반도 적절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경제 분야를 넘어 다각적으로 아프간에 관여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신장 지역엔 소수 민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핵심전략 산업인 핵무기 격납 시설도 있다"며 "탈레반이 위구르족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만 진출하지 (아프간에) 깊이 개입하려 들진 않을 것"이라고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ETIM 등과 연계된 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이 핵무기 격납시설을 점거해 핵무기를 유출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탈레반의 밀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협력관계가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라는 평가다. 탈레반이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를 고수해온 만큼, 향후 정세변화에 따라 '본색'을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는 "탈레반이 대단히 영악하게 나올 것"이라며 "국제사회 지원이 필요하니 당분간은 가면을 쓰고 유화적인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 교수는 "탈레반이 첫 번째로 내세우는 것이 경제재건"이라며 "경제재건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니 중국과 손을 잡겠지만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다. (탈레반의) 원리주의 사상, 극단적 이슬람 정책이 주변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소련·미국에 이어 제국의 무덤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탈레반 대변인은 외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나라와 국민들의 하인일 뿐"이라면서도 "우리는 이슬람 정부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