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강조하며 철군 강행
中 견제 위해 '전력 집중' 꾀하나
철군 자체가 中 압박이라는 평가도
"미국의 국익 없는 곳에서 싸우는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정부 붕괴 이후에도 미군 철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중동 정세에 끊임없이 관여해온 미국이 '국익의 관점'에서 기어이 철군을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진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20년 전 아프간에서 시작된 미국의 임무는 '국가 건설(nation-building)' 이 아니었다"며 아프간 철군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내가 해야 했던 선택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전 합의대로 우리 군을 철수하느냐, 아니면 분쟁을 확대시키고 수천명의 미군을 다시 전투에 투입해 30년차 분쟁으로 돌입하느냐였다"며 "나는 (미군 철군이라는) 내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물론 항상 그랬듯 아프간에서 우리의 유일한 주요 국익은 미 본토를 테러 공격으로부터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 언급대로 아프간 철군 결정은 표면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2월 탈레반과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협정을 맺은 바 있다. 탈레반이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과 교류를 단절하면 미국은 올해 5월 1일 이전까지 군대를 철수키로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 실패 뒤에도 아프간에서의 단계적 미군 철수를 강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초 취임 당시 추가 철군을 잠정 중단했지만, 지난 4월 아프간 전쟁종료를 선언했다. 탈레반이 합의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는 상황에서 미국 국내 여론까지 철수 동의로 기울어 바이든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다.
미국은 당초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차지하기까지 18개월여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출구전략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탈레반은 미국의 전쟁종료 선언 4개월 만에 카불을 점령하며 사실상 실권을 거머쥐었다.
성급한 철군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철수 명분으로 국익을 내세웠다.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 처형 등을 통해 미 본토 테러 위협이 사실상 사라진 데다, 군인을 포함한 미국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국익의 이면에는 중국 견제 목적도 있다는 평가다. 대중국 압박에 전념하고 있는 미국이 '분산된 역량'을 집중시키기 위해 아프간 철군을 무르지 않았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백악관은 지난 3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에서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한 바 있으며, 중국과의 대결 의지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아프간 철군 자체가 중국 견제 성격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군이 중동 정세 관리자 역할을 포기함에 따라 국경을 맞댄 중국 등이 대응을 고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국이 '이제 우리는 손을 털었으니 너희들이 잘해보라‘라는 식으로 (아프간에서) 나왔다"며 "미국으로선 빠져나오는 게 사실 더 낫다"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 교수는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한 뒤 철수했으면 되는데 그동안 미국은 실질적으로 아프간에서 모든 십자가를 다 지어왔다"며 "아프간을 여섯 나라가 둘러싸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하면 주변 여섯 나라들에 골칫덩이가 되는데 그 골칫덩이를 미국이 다 안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아프간과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며 분리 독립 움직임이 있는 신장 위구르족과 탈레반이 연대할 경우 중국이 골머리를 썩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장 위구르족과 탈레반은 모두 이슬람 수니파로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매개로 접촉면을 넓힐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박 교수는 "중국은 신장 위구르 내 극단주의자와 (탈레반이) 연결될까 우려한다"며 "중국이 미국이 제일 처음 아프간에 들어갈 때 엄청나게 비난했는데, 나오니까 또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개입을 꼬집었던 중국이 발등에 불이 떨어질 상황이 닥치자 기존 입장을 뒤집고 미군 철수를 비판하는 '내로남불 대응'에 나섰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