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뉴페이스 설계사만 10만명
1년 뒤 살아남은 확률 47.9% 그쳐
'자유로운 금융 전문직', 언뜻 들으면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다는 펀드 매니저나 프라이빗 뱅커가 떠오른다. 그런데 당신도 보름만 교육을 받으면 그런 명함을 가질 수 있다는 제안을 받게 된다고 상상해보자.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데 당분간 무슨 일이라도 해보자 마음을 먹었더니 정말로 재무 컨설턴트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만들어 낸 고용 절벽의 끝에서 부지기수로 양산되고 있는 보험설계사의 빛과 그늘을 들여다봤다.<편집자 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가 몰아닥친 지난 한 해 동안 국내 보험업계에 신입 설계사로 유입된 인원이 1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험설계사 바닥에서 생존한 이들은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이나 영업에 한계를 느낀 자영업자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보험설계사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빚만 짊어진 채 발길을 돌리는 악순환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가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생·손보사에 신규 등록된 보험설계사는 총 9만7522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전년보다 13.2%나 늘어난 숫자다.
금융권에서는 보험설계사 시장의 문을 노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배경으로 코로나19에 따른 불황을 꼽는다. 코로나19로 고용 환경이 급속도로 얼어붙자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보험설계사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받은 충격은 20여년 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취업자는 2690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21만8000명 급감했다. 1998년(-127만6000명) 이래 22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자,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8만7000명) 이후 11년 만이다.
◆높기만 한 현실의 벽
문제는 보험설계사가 되기는 쉬웠지만, 이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기는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업계의 13월차 설계사 등록 정착률은 46.9%에 그쳤다. 13월차 설계사 등록 정착률은 신규 보험설계사들 중 1년 이상 정상적인 상품 모집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인원의 비중이다. 조사 기간 신입 보험설계사가 10만명에 이른 것을 감안하면, 이중 5만명 이상은 1년도 안 돼 영업 현장을 떠났다는 얘기다.
보험사들은 설계사를 모집할 때 재무컨설턴트, 금융플래너 등 전문가를 떠올리게 하는 직책으로 입사를 권유한다. 처음에는 정착 지원금으로 어느 정도의 월급도 보장하고, 계약 체결 성공 시 첫 보험료 대비 10배가 넘는 모집 수당도 받을 수 있어 수익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처음 보험설계사 경험을 했다는 20대 최 모씨는 "보험 영업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활동 초기 몇 달 동안은 생각보다 괜찮은 수입이 지속되면서 앞으로 이 일에 전념해볼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1년 내에 친인척이나 지인 등 인맥 위주 영업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면 해당 설계사가 판매한 보험은 이른바 고아 계약이 돼 관리자가 없어지게 되고, 관계를 생각해 보험에 들었던 가입자들은 흔히 해약 수순을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험설계사들은 기존에 받았던 판매 인센티브까지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통상 계약이 1년을 유지되지 못하고 해지되면, 보험사는 상품 판매 시 설계사에게 지급했던 수당을 환수할 수 있어서다.
보험설계사에 첫 발을 디딘지 6개월 만에 결국 영업을 포기했다는 30대 김 모씨는 "일을 그만둔 후 수당 환급 부담과 더불어, 설계사를 그만두자마자 계약을 해지한 지인들과의 관계마저 서먹해지면서 자괴감이 크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 생존기②] 베테랑은 역대 연봉도 우습다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