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청구 부당성 소명기회 포기…도주·증거인멸 우려 높여
전문가 "그동안 행적 비춰 출석여부 상관없이 구속 가능성 커, 불출석 외 선택지 없었을 것"
"사실상 구속 결론 정해진 영장심사 출석 보다 밖에 남아 집회 당위성 주장이 유리하다 판단"
서울 종로구에서 수천명 규모의 불법집회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양경수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참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방어권을 포기한 '자충수'라는 해석이 나오는 한편, 구속이 거의 확실시 되는 '외통수'에 몰린 상황에서 불출석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잇따르고 있다.
양경수 위원장은 11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장 노동자들이 받는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절박하다는 판단을 했다"며 영장심사 불출석을 선언했다. 이날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법에선 양 위원장의 영장심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영장심사는 피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로 판사에게 검찰 영장 청구의 부당성을 소명하는 기회이다. 영장심사 불출석은 방어권 포기와 다름없고, 사안에 따라서는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영장심사 불출석은 구속 사유의 상당성을 높일 수 있다. 더프렌즈 법률사무소의 이동찬 변호사는 "영장심사에 나오지 않는 피의자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게 된다"며 "출석하지 않는 피의자 본인만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양 위원장이 영장심사에 불출석한 것은 출석 여부와 무관하게 구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깔려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 위원장은 지난 5∼7월 정부와 방역당국의 집회금지 처분에도 불구하고 도심에서 여러 차례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감염병예방법 위반 등)를 받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은 세계 노동절 대회(5월 1일), 시민 분향소 설치(6월 9일), 택배 상경투쟁(6월15일), 재해노동자 합동 추모제(6월19일) 등을 강행했다.
또 지난달 3일에는 서울 종로 일대에서 8000여명이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벌였고, 23일에는 강원도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옥 일대에서 게릴라 집회를 강행했다. 특히 원주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이 공단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차단하자 이를 우회해 가파른 언덕을 넘기도 했다.
서울고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은 재범의 위험과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해 피의자 구속 여부를 결정 한다"며 "그간 민주노총의 행보를 보면 집회강행 등 재범의 위험이 크고 반성의 가능성도 작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양 위원장은 영장심사 불출석을 선언하면서 "10월 총파업 투쟁은 차질 없이 준비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권력의 협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 변호사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대규모 집회 강행은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판단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구속 결론이 정해진 영장심사에 출석하는 것 보다는 끝까지 밖에 남아 집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