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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 취임 40주년…자산 288배 증가한 한화


입력 2021.08.01 07:00 수정 2021.08.01 06:47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석화·금융·서비스 산업 진출...태양광·항공우주 끝없는 영토 확장

위기를 기회로 삼은 도전적 기업인...국내 재계 서열 7위로 도약

‘의리 경영’ 포용의 리더십으로 임직원들과 깊은 유대감 구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한화그룹

1일로 취임 40주년을 맞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타고난 안목과 도전적인 승부사적 기질로 한화를 재계 서열 7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 ‘의리 경영’이라는 별칭으로 대표되는 포용의 리더십으로 지난 40년간 임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매김했다.


한화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매출은 65조4400억원으로 김승연 회장이 취임할 당시였던 지난 1981년 한국화약그룹의 총 매출액(1조1079억원)보다 약 60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그룹의 총 자산은 7548억원에서 217조원으로 288배나 급증했다.


계열사 수도 지난해 말 83개로 지난 1981년 19개에서 4배 이상으로 늘어나며 국내 재계 서열 7위로 올라서며 명실상부한 재계 대표 그룹으로 거듭나게 했다,


김 회장은 지난 1981년 부친인 김종희 창업주가 만 59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별세하면서 만 29세의 어린 나이에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지만 타고난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면서 그룹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이는 한국화약을 모태로 했던 한화의 사업 영역을 석유화학과 금융으로, 방산과 항공우주 분야로 넓히는 원동력이 됐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은 취임하자마자 나타났다. 김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솔루션 케미칼 사업부문)과 한국다우케미칼을 한 번에 인수하며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지난 1979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로 2차 석유파동이 일었고 석유화학 사업 전망이 부정적이었음에도 과감한 도전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당시 국제 유가가 지난 1978년 초 배럴당 13.66달러였던 것이 1981년 10월말 38.28달러로 34개월 동안 180%나 폭등했다.


부정적 전망이 짙게 깔렸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판단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김 회장의 안목과 도전적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남들이 '노'(No)라고 할 때 '예스(Yes)'를 외친 뚝심경영의 성과는 이때부터 태동됐다.


이후 1984년 한양화학, 한국다우케미칼, 한양화학지주 3개사를 합병하여 한양화학을 설립하면서 석유화학이 그룹의 주력 사업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다. 한양화학은 1994년 한화종합화학, 1999년 한화석유화학, 2010년 한화케미칼 등으로 이어지며 그룹의 주축으로 자리잡아 도약을 이끄는 주역이 됐다.


한화솔루션 직원이 공정 및 안전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자료사진)ⓒ한화솔루션

석유화학사업 진출 이후 다음 선택은 의외로 호텔과 리조트 등 서비스 산업으로의 확장이었다. 지난 1983년 9월 정아그룹이 부실기업 정리 대상에 포함되자 김 회장은 1985년 주력 회사 6곳을 한 번에 인수하며 사업 영역 확대에 나섰다.


금융사업 진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김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잘 발휘된 결과물이다. 한화는 지난 2002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를 단행했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업에 손을 대는 결정이었고 당시 대한생명의 누적손실이 2조3000억원에 달하던 상황이었다.


재계에서 한화의 인수 결정에 대해 놀라움과 함께 많은 우려를 나태냈지만 이후 6년만에 누적 손실을 완전히 해소하며 우려를 기대로 바꿔 놓았다.


대한생명 인수는 한화가 금융 부문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대가 됐고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에도 흔들림 없는 행보로 이어졌다. 한화는 지난 2010년 푸르덴셜투자증권을 인수해 한화투자증권과 합병하며 금융 사업을 더욱 키워나갔다.


한화그룹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M&A) 딜로 꼽히는 삼성과의 빅딜도 김 회장의 안목과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과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4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석유화학)·삼성테크윈(항공부품)·삼성탈레스(방위산업)를 인수하는 2조원대 초대형 패키지 딜을 성사시켰다.


당시만 해도 M&A 규모로 인해 한화의 무리수라는 평가와 함께 '승자의 저주'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의 성과만 놓고 보면 우려는 기대로 완전히 바뀌었다.


또 두산그룹 방산업체였던 두산DST도 인수해 한화테크윈의 지상방산부문과 결합시켜 한화디펜스로 출범시켰다.


주력인 석유화학 사업에 방산을 넘어 항공우주산업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비전을 내다본 김 회장의 선택으로 미래 신성장동력을 강화하게 됐다.


사명을 바꾼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은 석화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데 기여했고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는 각각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으로 변모하며 방산과 항공우주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는데 기여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한 주택에 설치된 한화큐셀 태양광 모듈.ⓒ한화큐셀

김 회장은 미래를 내다 본 선택도 탁월했다. 현재 한화그룹의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태양광 사업도 김 회장의 선견지명이 제대로 발휘된 결과물이다.


태양광 사업이 생소했던 초창기부터 그룹의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선택하고 기업들을 M&A하며 사업을 육성해 나갔다. 지난 2010년 나스닥 상장사였던 솔라펀파워홀딩스에 이어 2012년 독일 태양광 업체 큐셀도 인수하며 규모를 키워나갔다.


이후 10년간 태양광 사업이 폴리실리콘·셀·모듈 가격 하락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김 회장의 뚝심 경영은 태양광을 완전한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잡게 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태양광 전도사로 활약하며 후계자로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도 기여했다.


김 회장은 지난 40년간 수많은 M&A를 통해 그룹을 성장시켜 오면서도 포용의 리더십을 유지해 왔다.


많은 기업들을 인수하고 매각하는 과정에서 금액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직원들의 고용 승계 및 고용 보장을 가장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워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난 2015년 삼성과의 빅딜때도 모든 직원들을 고용 승계했으며 급여와 복지 등 처우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해 인수 후 잡음이 나지 않도록 했다.


또 임직원들과도 스스럼 없이 대하며 인간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유대감을 구축해 왔다. 지난 2014년 한화건설 이라크 공사현장 방문 시에는 현지 직원들을 위해 광어회 600인분을 공수해 제공했으며 앞서 2010년 서울 플라자호텔이 리모델링으로 문을 닫게 되자 모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주기도 했다.


이 외에 한화생명 우수 설계사들에게 포상으로 명품 가방을 선물한 일이나 그룹 임원들을 데리고 고급 의류 매장에서 직접 선물을 골라준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 40년간 한화그룹이 성장을 구가하며 재계 7위로 도약하는데 있어 김승연 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며 “위기를 기회로 보고 끝없이 도전해 온 그의 승부사적 기질은 후배 기업인들에게 분명 귀감이 될 만하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직원들이 항공엔진을 검수하고 있다.(자료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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