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 끝까지 선별 지급 강조
여당 내 ‘90% 지급안’ 만지작
전문가 “효과 없는 정치 셈법”
기획재정부가 재난지원금(상생지원금) 선별 지급에 ‘배수의 진’을 치자 전 국민 지급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여당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기재부는 홍남기 부총리 겸 장관에 이어 이억원 1차관도 공개석상에서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당위성을 역설하며 여당의 전 국민 지원 반대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다.
이 차관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상대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적은 고소득층까지 국민지원금을 지급하는 건 당초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편성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여당의 전 국민 지급 주장을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가 한창인 상황에 장관에 이어 차관까지 나서 여당 주장을 반박한 것은 더 이상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지난 2일 추경안 국회 제출 이후 지금까지 정부와 여당은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이어왔다. 기재부가 선별 지급 뜻을 굽히지 않자 일부 여당 의원들은 홍 부총리에 대한 해임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나아가 “재정에 관한 권한을 모두 틀어쥐고 휘둘러 온 기재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왔다.
여당이 장관 해임까지 운운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지만 기재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홍 부총리는 여러 차례 추경안 수정 계획이 없음을 밝혔고, 이번에 차관까지 나서 선별 지급 의지를 재확인시키며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이처럼 기재부가 강하게 반발하자 여당 내부에서도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전 국민 지급 대신 초고소득층을 제외하는 방안으로 선회하려는 움직임이다. 전 국민 지급 대신 가구소득 상위 10%를 제외하는 내용이다. 일부 고소득층만 제외해 기재부의 선별 지급 요구를 들어주면서 사실상 전 국민 지급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급 대상 확대에 따른 재원 마련도 비슷하다. 그동안 기재부는 재정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초과세수 가운데 최소한의 금액(2조원)을 국채 상환에 써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홍 부총리가 추경 편성 전부터 약속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당은 전 국민 지급으로 재원이 부족해지자 국채 상환 예산을 재난지원금 예산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해 왔다. 이 역시 기재부가 강하가 반대하면서 최근 2조원 가운데 일부는 국채 상환에 쓰고, 일부만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여당은 더불어 올해 편성된 본예산 가운데 경기 부양성 예산이나 불용 예산을 증액 재원으로 활용해 추경안 순증 규모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효용성 논란을 낳고 있는 카드 캐시백 제도를 철회해 재난지원금 예산을 확보하는 계획도 거론된다.
한편, 일각에서는 소득 하위 90% 지급안은 재원 낭비만 초래할 뿐 정책 목적 달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김원식 한국경제학회 부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소득 격차가 예상외로 벌어지고 있다”며 “빈곤층이 아닌 경우는 (재난지원금을) 고마워하지도 않고 90% 지급은 정치 셈법의 결과물로 경기에 도움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이제는 늘어난 국가부채를 줄여서 다음 세대로 전가하는 부담을 줄여야 한다”며 “책임은 정부가 지는 만큼 정부가 (정책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