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개봉
예매율 1위
프로듀서가 된 나홍진과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작정하고 샤머니즘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한 번 자리에 앉은 이상 그들이 안내하는 기괴한 길목엔 출구가 없다.
'랑종'은 그 어떤 신작보다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곡성'으로 687만 명을 동원하며 작품성과 흥행력을 인정받은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쓰고, '셔터', '샴' 등 태국의 공포영화들을 연출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덕분이다.
'랑종'은 태국 산골마을,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석 달간의 기록을 그렸다. 태국의 북동부 이싼이라는 마을 지역 사람들은 물건 하나에도 신, 혹은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집안 대대로 바얀 신을 모시고 있는 님(싸와니 우툼마 분)은, 언니 노이 대신 무당이 된 인물이다. 님은 오랜만에 만난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 분)의 이상 행동을 보고 빙의됐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님의 언니이자 밍의 엄마는, 자신이 그랬듯 딸도 운명을 거부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럴수록 밍의 이상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님은 조카를 위해 악령을 추적하지만 쉽지 않다. 님은 선, 밍은 악의 대체자 역할로 계속해서 부딪친다.
'랑종'은 '곡성'의 세계관을 태국으로 옮긴 모양을 하고 있다. '곡성'에서 선과 악의 모호한 존재로 등장한 무당 일광(황정민 분)의 전사가 태국에서 펼쳐진다. 영화의 외형도 닮았지만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비슷하다. '곡성'에서 종구(곽도원 분)가 빙의된 딸 효진(김환희 분)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결국 허망함과 절망을 마주한다. '랑종'도 노이가 딸 밍을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다 결국 저주와 가문의 원죄란 덫에 걸리고 만다.
영화는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하며 현실감을 더한다. '랑종'의 한 시간 동안은 다큐멘터리처럼 님과 밍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는데, 이는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밍이 본격적으로 빙의된 후반 1시간은 어느새 지나가버린다.
특히 밍을 구하기 위한 의식을 치르기 전, CCTV로 밍을 관찰하는 모습이 공포를 극대화한다. '블레어 위치'에서 봐왔던 페이크 다큐 형식의 카메라 구도, '유전'에서 보여준 피의 대물림 소재가 중심이 돼 이야기 자체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산으로 둘러싸인 태국의 습하고 축축한 날씨가 섬뜩함을 유발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스산한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가 끝나고 나설 때 시각, 청각적으로 느껴진 공포보다, 점도 높은 끈적함이 기묘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선정적이고 잔혹한 장면으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생리혈이 흐르거나, 성관계 영상, 강아지와 아이를 학대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와 관련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자극적인 장면을 팔아 흥행을 할 생각은 없다.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영화들처럼 주인공들이 다시 웃음을 찾거나 일상으로 복귀하는 바람은 일찌감치 접어두는 게 좋다. '추격자' '황해' '곡성'을 되돌아봤을 때 나홍진 세계에 인정, 사정, 해피엔딩은 없다. 고통과 타격을 동반하는 악과 달리 신(선)은 믿는 것 외에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 확인시킨다. '랑종'의 해석 여지가 분분해질 수 있는 이유가 마지막 장면에 담겼다. 14일 개봉. 러닝타임 13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