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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②] 공공기관 경영평가 오류 “내 탓 아니다”


입력 2021.07.08 07:02 수정 2021.07.07 21:32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배점 잘못으로 10개 기관 등급 변경

기재부 “책임 물어 관련 위원 해촉”

전문가 “평가위원 해촉은 책임 회피”

8월 예정 개선책...정부 입맛대로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달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0년도 경영평가' 수정발표 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지난달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도입한 지 37년 만에 단순 계산 오류로 10개 기관의 등급이 바뀌는 일이 발생했다. 사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는 잘못을 평가 위원들 탓으로 돌리면서 8월까지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실수가 발생한 것도 문제지만 이를 수습하는 과정 또한 총체적 난국이라 꼬집는다.


지난 1984년 도입한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외부 전문가들이 다양한 지표를 바탕으로 기관 경영 전반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긴다. 이렇게 매겨진 등급은 임직원 성과급과 직결되며 등급이 낮은 경우 기관장 해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단순 계산 실수로 기관 등급이 바뀌는 일이 발생했다. 계산 오류로 10개 기관 평가 등급이 번복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고 터지자 평가위원에 책임 전가


지난달 18일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발표한 기획재정부는 일주일 뒤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이 사회적 가치 비계량 지표 가운데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등 4개 항목 배점을 잘못 적용해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현재 외부검증 방법으로 대상기관 이의제기 절차를 운영 중이나 보안 등을 위해 전체가 아닌 계량지표 등 제한적 범위에서 의견을 조회하므로 비계량지표에서 발생한 오류를 사전에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곧바로 평가 단장과 위원을 해촉하고 향후 경영평가위원 위촉 대상에서도 제외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경영평가 사업을 위탁받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평가단 간 계약을 해지하고 기성금 삭감 등의 조치를 예고했다.


기재부는 “오류 가능성을 체크할 평가단 내부 다단계 상호 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관련 책임을 평가단에 전가했다. 경영평가를 총괄하고 검증해야 할 기재부가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일자 그제야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전반적 책임은 이 평가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기재부에 있다”면서 “이번 사고가 발생한 원인,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제도 개선 노력에 우선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기재부는) 평가단이 전권을 갖고 독립적으로 평가하도록 한 것이 오류를 불러왔다고 해명하지만 평가단에 전권을 주는 이유는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그걸 핑계 대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라며 “기재부 말대로 기초적인 실수였다면 그런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최종 확인을 해야 하는 것도 자신들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입김 강할수록 평가 신뢰도 떨어뜨려


기재부가 사고 이후 약속한 개선방안도 우려가 제기된다. 기재부는 평가 오류 재발 방지를 위해 공공기관연구센터 기능 강화를 예고했다. 사전 검증은 물론 최종 검증에도 공공기관연구센터가 가담한다.


공공기관연구센터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산하 단체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기관이다. 이런 기관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정부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 영향력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로만 평가단을 꾸려온 이유와 상충하는 방향이다.


과거 경영평가 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한 관계자는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지금처럼 외부인으로만 평가단을 꾸려도 기재부 출신이거나 기재부 관련 학회 출신들이 많아서 말이 많은 상황인데 여기에 노골적으로 정부 입김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꾼다면 당연히 논란이 상당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기재부를 확실히 배제하는 평가 방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평가단 전문성이 부족하고 특정 분야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한 연구기관이 조사한 결과 평가단 가운데 70% 정도가 학계 출신이고 그 가운데 절반이 행정학 또는 경영학 전공이다. 학계 출신이 많아 현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행정·경영학 전공 중심이다 보니 수익성 위주 평가가 이뤄진다는 분석이다. 평가 과정에서 전공과 관계없는 분야를 평가하는 경우도 생긴다.


평가 지표가 자주 바뀌는 부분도 문제다. 경영실적 평가는 직전 연도 말까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되는 ‘경영평가 편람’을 기초로 하는데 편람 수정이 너무 잦다. 많은 경우 1년에 4~5차례나 바뀐다.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지표를 신설 또는 삭제하고 이에 따른 가점을 부여하거나 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렇다 보니 공공기관 경영평가 취지가 점차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영평가 과정에 정부 입김이 강해지고 그만큼 공공기관 본연의 기능이 뒷전이 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직 평가위원은 “이미 사고는 발생했고 남은 것은 재발 방지인데 기재부가 8월 내놓을 개선안이 이러한 논란과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공공기관이 공공기관답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의 대책이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도 개선 때 공공기관 입장 반영해야


이번 경영평가 오류는 사회적 가치 지표 관련 평점을 기관별로 다른 배점으로 평가해야 하는 데 모두 동일하게 적용하면서 발생했다. 사회적 가치 지표를 기관별로 달리 평가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전 국민 공분을 자아낸 LH가 지난해 경영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고 이에 정부는 올해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지표 배점을 조정해 LH가 높은 등급을 받지 않도록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경영평가 오류로 가장 피해를 보는 집단은 바로 평가 대상인 공공기관이라고 말한다. 실제 등급을 달리한 10개 부처는 피해자 입장이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다.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경영평가 개선방안을 내놓겠다고 하자 경영평가가 취지와 달리 지나치게 공공기관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점을 강조한다. 현재는 경영평가를 해마다 진행하다 보니 공공기관들은 결과적으로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당연히 중·장기 투자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중·장기 사업은 사업 초기 투자가 많이 이뤄지는 만큼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그해 경영평가 실적에 그대로 반영된다. 경영평가를 생각한다면 중·장기 사업은 기피할 수밖에 없다.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기는 것 또한 과도한 경쟁을 부르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나아가 수익성을 중심으로 경영평가를 계속할 경우 연구기관이나 출연기관들은 평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제도 개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현재 공공기관들은 매년 치러지는 경영평가를 의식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며 “단기 수익성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공공기관의 존재 목적이지만 경영평가 탓에 빛이 바랬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 임원은 “성격이 다른 수십 개 기관을 평가하면서 획일적 잣대로만 점수를 매기면 그게 제대로 된 평가라고 할 수 있겠냐”며 “모든 공공기관은 설립 목적이 있는 만큼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길을 안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평가 등급에 따라 임직원 성과급은 물론 예산과 인사까지 달라지고, 심지어 기관장 자리마저 걸린 만큼 정부가 각 기관 성격을 고려해 촘촘한 경영평가 방안을 내놓을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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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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