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회의 쉬는 시간에도 친문과는 안 어울려
권력기관 사유화 논의 등에 섞이지 않은 듯
"백로가 까마귀 노는 곳서 철저히 거리 둬"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문재인정권의 임명직을 내려놓고 자연인 신분이 됐다. 감찰기관장으로서 친문 세력과 거리를 두고 직무에 전념했던 최 전 원장의 사퇴를 놓고 범여권이 맹비난을 가함에 따라, 오히려 최 전 원장이 향후 행보를 모색함에 있어 부담을 덜게 됐다는 분석이다.
최재형 전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28일 정치권의 반응을 종합하면, 최 전 원장은 문재인정권에 의해 감사원장으로 임명되기는 했지만 직무수행 도중 친문(친문재인) 권력 집단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감찰기관장답게 일정한 선을 지켜왔던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이날 SNS에 "최 원장은 반부패정책협의회 등 청와대 회의에 참석해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며 "쉬는 시간에도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청와대에서 진행된 권력기관 사유화 논의 등에 뒤섞이지 않고 거리를 유지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애초 문재인정부와 결이 많이 달랐다고 한다"는 김 의원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백로가 까마귀 노니는 곳에 갔다가 몸을 더럽히기 쉬운데, 김의겸 의원의 말을 들어보면 최재형 원장은 친문 까마귀떼들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 듯 하다"며 "백로가 까마귀떼들로부터 벗어났으니 본격적으로 대권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했다.
'찍어내기' 윤석열과는 달리 스스로 나온 성격
친문 세력 이례적 맹비난…부담감 덜어낸 측면
"극단적 언사로 공격, 권력의 속내가 드러났다"
'백로' 최재형 전 원장이 '까마귀떼' 친문 권력 집단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부담스러운 것은 중도사퇴의 명분이다. 또다른 범야권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집권 세력의 '찍어내기' 표적이 돼서 징계와 직무정지까지 당했다. 반면 최 전 원장은 탈원전 감사를 놓고 집권 세력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기는 했지만, 노골적인 탄압에 직면했던 적은 없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등 범야권에서조차 "윤석열 총장은 쫓겨난 것이고 최재형 감사원장은 스스로 나온 경우"라며 "쫓겨나는 것과 스스로 나오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고 보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이 할 것"이라는 평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친문 권력 집단이 이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사퇴를 일제히 맹비난함에 따라 오히려 중도사퇴에 따른 정치적 부담감이 가벼워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부터가 사표를 수리하면서 "(중도 사퇴는)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라고 스스로 공세의 선봉에 섰다. 윤석열 전 총장의 사의를 수용할 때에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번 최 전 원장의 사표 수리 때 유감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범여권 인사들도 벌떼처럼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최고위원은 "헌법 모욕"이라고 했으며, 우상호 의원은 "공직 윤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민석 의원은 "치졸하고 조악한 결말", 박주민 의원은 "한탕주의", 이광재 의원은 "임명권자의 등에 칼을 꽂는 기회주의자"라고 극언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친문 세력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엄정하게 감찰을 진행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그간 얼마나 마뜩찮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속내가 드러났다"며 "극단적인 언사로 공격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최재형 전 원장의 사퇴에 명분을 실어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다 부담없이 향후 행보 모색할 수 있게 됐다
국민의힘 입당까지의 '숙고 기간' 단축될 여지
"가장 먼저 입당해 스포트라이트 받을 수도"
범여권의 맹비난이 최재형 전 원장을 범야권 쪽으로 밀어내는 측면이 있는 만큼, 최 전 원장은 보다 부담없이 향후 정치적 행보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는 관측이다. 직전 감사원장으로서 정치적 공백지대에 불가피하게 다소간 머물러야 할 것으로 보여졌지만, 그 기간이 극적으로 단축될 여지가 열렸다는 것이다.
최재형 전 원장은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며 "(대권 도전 등은) 지금 드릴 말씀이 아닌 것 같으니, 차차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숙고하는 시간'을 일정 기간 갖는 것을 전제로 정계 입문과 대권 도전의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다. 최 전 원장은 지난 주말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아들이 가는 길을 믿어달라"며, 현실정치 참여를 전제로 부친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왕 정치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감사원장을 그만 둔 이상, '숙고하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최재형 원장이 최근 야권의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초기 단계에서 지지율은 5% 선에 머무르고 있다"며 "지지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려면 당밖 대권주자 중에 가장 먼저 제1야당에 입당함으로써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윤석열 전 총장이 지난 3월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100일이 지났지만 당밖에서 딱히 이룬 것도 없고보면, 이같은 사례가 최재형 원장에게는 반면교사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며 "독실한 개신교인답게 우회로나 꼼수를 택하지 않고 제1야당에 조기 입당에 정공법으로 경선 준비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