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銀 외화예금, 올해만 4조4천억 늘어
금융 불안 장기화 속 유동성 확보 '단비'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외화예금 보유량이 올해 들어서만 4조원 넘게 불어나며 9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무역이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들의 수출 대금이 두둑하게 쌓이고 있고, 최근에는 환율이 낮을 때 달러를 확보해 두려는 개인들의 수요까지 가세하는 모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길어지면서 외화 유동성 확보에 난항을 겪던 은행들에게 이런 흐름은 가뭄 속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의 올해 1분기 외화예수금 평균 잔액은 86조823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조4334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외환 거래가 규모가 가장 큰 하나은행의 외화예수금 평잔이 32조9386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2조5979억원이나 증가했다. 신한은행 역시 16조7277억원으로, 국민은행도 16조5305억원으로 각각 1조1142억원과 8783억원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조사 대상 은행들 중에서는 우리은행의 외화예수금만 20조5271억원으로 1570억원 줄었다.
은행 외화예금이 몸집을 불린 배경에는 우선 기업들의 자금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들어 수출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은행에 쌓이고 있어서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수출은 1456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9억2000만 달러나 증가했다.
달러가 쌀 때 사두려는 개인들의 수요는 은행 외화예금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올해 4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1112.3원으로 전달보다 19.5원 내렸다. 한국은행은 개인들이 달러화 예금 통장을 통해 현물환을 매수하면서 외화예금 규모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를 일컫는 이른바 서학개미들도 은행 외화예금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투자가 증가할수록 증권사들이 은행에 맡겨놓는 달러 예탁금 규모도 커지게 되는 구조여서다.
◆은행 위기 대응력 개선효과 기대감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외화 유동성을 관리하는데 애를 먹고 있던 은행들 입장에서 늘어나는 외화예금은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말 4대 은행들의 평균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108.5%로 1년 새 11.9%p나 떨어진 실정이다.
외화 LCR이 낮아졌다는 것은 외환 위험 발생을 둘러싼 은행의 대비 여력이 이전만 못해졌다는 의미다. LCR은 금융위기 시 자금인출 사태 등 심각한 유동성 악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은행이 당국의 지원 없이 30일 간 자체적으로 견딜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해 정한 규제로, 수치가 낮아질수록 유동성 위기에 따른 대응 여력이 악화됐다는 의미다.
외화예금을 둘러싼 은행들의 경쟁에는 앞으로 더욱 불이 붙을 전망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 외환시장에 잠재된 불안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지적에 금융당국이 외화 유동성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다.
금융당국은 이전까지 월마다 이뤄져 오던 은행권의 외화 LCR 점검 기간을 일 단위로 조정해 보다 촘촘하게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아울러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외화 유동성 등에 대한 자체 위험 관리 기준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이 해소되면서 달러 등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를 선점하려는 은행들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