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통주 외길 인생…국순당 대표 제품 탄생시킨 주역
핵심 특허 '발효제어기술' 개발…“꽉 막힌 수출 길 열어”
우리 술 복원 작업에도 ‘힘’…“막걸리 관련 규제 개선돼야”
“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이 선택돼 국순당 횡성 양조장에서 발효하고 최종 생산 라인을 따라 제품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또 시장에 나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생각하면 긴장도 됩니다.(웃음)”
지난 14일 강원도 국순당 횡성 양조장에서 만난 박선영 생산본부 본부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통주는 다양한 원료를 기본으로 지역마다 특색 있는 맛을 지닌 것이 특징”이라며 “효모와 유산균 등과 같은 양조 미생물을 발굴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국순당에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지난 2002년 국순당 입사 후 회사의 대표 제품들을 잇따라 탄생시키는데 공헌했다.
국순당 대표 주류 ‘백세주’에 효모를 접목하는 연구를 시작으로 현재는 막걸리를 포함한 다양한 주종의 연구와 생산 관련 총괄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국순당 생막걸리, 1000억 유산균 막걸리와 같은 탁주는 물론 약주와 증류주 등 20여종의 제품 개발 및 개선에 참여했다”며 “같은 제법이라도 빚는 양, 시간에 따라 술 맛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균일한 맛과 향을 전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아재술’ 꼬리표 옛말…“올해 안으로 대표 제품 리뉴얼 계획도”
최근 박 본부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동안 침체했던 막걸리 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어서다. 지난해 들어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주요 유통 채널을 중심으로 젊은층에게 새로운 주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책임감이 더욱 막중해졌다.
기성세대 대표 주류인 막걸리를 MZ세대가 소비를 이끌면서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외국인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시장 판도는 더 커졌다. 과거 ‘서민술’ ‘아재술’ 등 낡은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으나, 주류 시장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면서 놀라운 변화를 불러왔다.
박 본부장은 “최근 막걸리 트렌드를 하나로 꼬집어 말하자면 ‘다양성’이라 할 수 있다”며 “혼술과 혼밥과 같은 문화가 확산되다 보니 자연히 소비자 입맛이 다양해졌고, 막걸리 시장에도 이런 부분이 영향을 받으면서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막걸리의 경우 원료와 패키지 등이 대부분 획일화 됐지만, 갈수록 알코올 도수는 물론 원료 등이 다채로워 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건강 기능성 제품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애정이 담긴 제품은 ‘국순당 생막걸리’다. 본부장이 발효제어기술을 기반으로 업계 최초로 수출까지 이끌어 낸 제품이기도 하다. 그는 “출시 이후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당시 쪽잠을 자가며 생산했던 제품이라 기억이 가장 많이 남는다”고 회상했다.
‘국순당 생막걸리’는 지난해 7월 기존 녹색 패트병에서 친환경 투병 용기로 바꾸고 레시피를 변경해 맛을 개선하는 리뉴얼을 단행했다. 이어 올해 안으로 한 차례 더 개선해 변화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고 생막걸리 시장의 인기를 다시 한 번 견인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외에도 박 본부장은 막걸리 시장을 넓히고 알리기 위한 여러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2012년에는 탄산의 청량감을 입힌 ‘아이싱 자몽’을 선보였고, 2016년도에는 과일막걸리의 첫 제품인 ‘국순당 쌀바나나’를 출시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막걸리를 시장에 잇따라 제시한 바 있다.
◇ 특허기술 획득해 수출 길 열어…막걸리 이젠 ‘K-주류’
박 본부장은 국순당 특허기술인 ‘발효제어 기술’ 개발을 통해 수출 길을 연 주역이다. 발효제어는 생막걸리 안에 살아있는 효모의 활성을 조절하는 기술을 말한다. 내부 이산화탄소 증가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이에 따라 유산균의 발효를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완전 밀폐캡 사용이 가능해졌고 생막걸리의 최대 단점인 짧은 유통기한을 30일 이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간 막걸리의 경우 병뚜껑에 이른바 숨구멍이라는 틈새가 있어 막걸리를 옆으로 눕히면 그 틈으로 술이 새어 나오는 단점이 치명적이었다. 위생상의 문제도 컸다. 하지만 국순당은 발효제어기술로 막걸리 업계 최초로 콜드체인 시스템을 적용해 전국적 유통망을 구축하게 됐다.
박 본부장은 “국순당 생막걸리가 수출되기 전에는 미국까지 수출에 걸리는 일정 때문에 유산균이 살아있는 생막걸리는 수출이 불가능해 살균 막걸리만이 수출됐다”며 “수출길이 열린 이후 올해 1~2월 누계 수출액이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1000억 프리바이오 막걸리’가 미국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성분을 함유한 제품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현지인의 관심이 높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해 수출 첫해 임에도 10여 개 국가에 수출하는 한편, 올해는 20여 개 국가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국순당은 향후에도 수출을 지속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현재 전 세계 50여 개 국가에 백세주와 막걸리 등을 수출하며 우리 전통주와 음식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통주 업계 최초로 5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바 있다.
◇ 우리술 복원에 ‘힘’…옛 조상이 빚던 전통주, 현대식으로 재현
최근 그는 문헌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술을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옛 문헌(조선양조사)에 따르면 막걸리는 처음 대동강 일대에서 빚기 시작해 전 국토에 전파돼 민족 고유주가 됐다. 그 진위는 가리기 어려우나 토속성이 짙은 술임이 분명한 셈이다.
막걸리는 조선시대만 해도 지역과 애주가들의 취향에 따라 종류만 몇 백 가지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일제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하나로 사실상 금주령이나 다름없던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본부장은 이때 만들어졌던 술을 다시 복원하는데 힘쓰고 있다.
2008년도부터 지금까지 25개의 전통주를 복원하고 그 중 일부 제품인 ▲송절주 ▲자주 ▲사시통음주 ▲청감주 ▲이화주는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박 본부장은 “전통주 복원은 비단 상업화에 목적이 있지 않다. ‘전통을 오늘에 맞게’ 라는 우리술의 근본 가치를 찾아 전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보고, 또 우리술 문화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술 제법의 이치를 깨달아 새로운 제품 개발에 적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향후 대중 막걸리보다는 지역 기반과 옛 것을 재해석한 다양한 막걸리를 볼 수 있는 트렌드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며 “최종적으로 ‘아이폰’과 같이 주류 시장에서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막걸리를 개발해 막걸리가 주는 새로운 즐거움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 6월 무형문화재 지정 입법예고…“막걸리 규제 완화도 뒷받침 돼야”
문화재청은 오는 6월 ‘막걸리 빚기 문화’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막걸리는 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어 저렴하고 지역별 특색이 뚜렷하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본부장은 “막걸리가 우리 전통주, 전통문화 라는 인식은 앞으로도 변함 없겠지만 무형문화재로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며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문화임을 인정 받은 만큼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막걸리 빚기 문화의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더불어 그는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등의 지원을 통해 체험, 문화, 전시, 관광등 다양한 활동이 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자연스레 막걸리에 대한 위상이 높아지고 현재보다 막걸리 수출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향후 막걸리 시장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막걸리 관련 규제 완화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우리술의 특징은 다양성으로 요약되는데, 주종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법적으로 막아둔 막걸리 제법에 제약성이 이 시장 성장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박 본부장은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엿기름(발아곡물)으로 막걸리를 빚는 제법이 있는데 현재 주세법 상 막걸리는 엿기름으로 빚을 수는 없다”며 “빚더라도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돼 주세와 유통 환경이 불리하게 작용된다”고 씁쓸해했다.
이어서 그는 “개발자 입장으로서 식품원료로 인정받은 모든 원료로 막걸리를 빚을 수 있도록 제한이 아닌 확대가 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향 첨가 막걸리가 기타주류로 분류되는 규정도 개선돼야 할 부분중 하나로 보여진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소비자의 혼선을 줄이기 위한 작업도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통주의 정의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세분화해 우리 문헌에 근거한 제품 역시 전통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보완돼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본부장은 “현행법상 주류의 온라인 판매는 전통주에 한해 가능하지만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백세주 등은 전통주로 분류돼 있지 않다”며 “와인은 우리나라 전통주가 아니지만 양조장 인근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전통주로 인정받아 온라인 판매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반 소비자들이 전통주라고 인식하고 있는 많은 술들이 전통주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주와 사전적 정의간 차이가 있다보니 온라인에서 판매되지 않는 술은 전통주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는 사람도 많다. 이런 부분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고 일침했다.